22대 총선을 불과 44일 남겨 놓은 가운데, 여·야 공천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9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는 개혁신당으로 빅텐트를 치는데 전격 합의하면서 제3지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으나, 통합 11일 만인 지난 20일 이낙연 공동대표의 합당 철회 발표에 국민들의 시선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합당 파기로 궁지에 몰린 개혁신당은 지난 23일 ‘선거의 마술사’로 통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권을 부여한 공천관리위원장 임명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섰으며, 새로운미래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친명 vs 비명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이삭줍기를 통한 제3당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공천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진행된 지금까지의 공천 결과를 살펴보면,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씁쓸한 造語(조어)까지 등장하면서 공정성도 일관성도 상실한 더불어민주당 공천보다는 ‘조용한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민의힘의 공천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충청권 공천의 경우 특히, 대전·세종·충남의 공천을 들여다보면,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더욱 요란스러운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이해찬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강진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의 세종갑 전략공천설에 따른 당원들의 반발과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를 받은 대덕구 박영순 의원의 반발 정도만 있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무난한 단수공천 또는 경선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보수계열 정당 최초로 시스템 공천을 표방한 국민의힘의 경우 유독 대전·세종·충남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7일 윤창현 의원을 대전 동구 단수공천자로 발표했다. 자신들이 만든 공천룰에 여론조사에서 단수공천 기준을 2배 이상의 격차라고 규정하고도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도 못한 채 윤창현 의원을 단수공천자로 발표한 것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월권이며, 자신들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다. 대전 동구에서는 두 명이 공천 신청을 했는데, 여론조사 단수공천 기준 2배 이상 격차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단수공천을 강행한 지역은 대전 동구가 유일하다. 더구나 윤창현 의원이 단수공천자로 발표되자 경쟁자였던 한현택 전 동구청장은 단수공천에 강력 반발하면서 지난 21일 지지자들에게 “한현택 흔들리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45년간의 공직생활과 재선 구청장으로 동구를 위한 헌신과 노력에 대한 동구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보답하고자 22대 총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할 것입니다”를 문자메시지를 보내 무소속 출마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현택 전 동구청장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만 漁父之利(어부지리)를 얻게 될 확률이 높다. 한현택 전 동구청장과 비슷한 케이스의 성선제 세종갑 예비후보도 네이버상에서 ‘성선제 재심촉구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류제화 변호사의 단수공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성선제 예비후보 역시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납득할 만한 답변이 없으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고 천명한 바 있어 가뜩이나 국민의힘에게 어려운 지역으로 분류되는 세종시 선거 구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 중구 또한 국민의힘으로서는 거대한 화약고가 될 개연성이 높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동안 대전 7개 선거구 중 6개 선거구에 대한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전 중구를 보류지역으로 분류하였고, 국민의힘 중앙당은 지난 22일 기습적인 후보 추가공고를 단행해 기존 예비후보로 뛰고 있던 이은권 대전시당위원장과 강영환 (사)지방시대연구소 이사장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이은권 대전시당위원장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중앙당에 항의 방문하여 후보 추가공고를 강하게 성토했다. 더구나 국민의힘 중앙당의 대전 중구 후보 추가공고가 문제가 되는 것은 私薦(사천) 논란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에서 전략공천 대상자로 거론되었던 채원기 변호사는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의 고려대 법과대학 제자이자 정영환 위원장이 지난 1999년 설립한 법무법인 TLBS에 2014년 입사하여 현재 TLBS 대표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채원기 변호사가 전략공천 대상자로 오르내리면, 정영환 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채원기 변호사가 “경선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역민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또 다른 전략공천 대상자로 거명되는 최명길 전 의원의 경우는 지난 2015년 음주운전 전력과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선거사범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도 대전 중구 후보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민의힘의 파열음은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충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충청권 컷오프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는 아산갑의 이명수 의원 지지자들의 반발도 무척 거세다. 이명수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자신이 충청권 컷오프 대상자로 이야기되는 것과 관련하여 “이번 일은 아산시민에 대한 정치적 모멸 행위이고,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아 아산 및 충남지역 국민의힘 승리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판단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수 의원 뿐만 아니라 이명수 의원을 지지하는 국민의힘 아산갑 청년위원회와 국민의힘 아산지역 시·도의원들도 각각 성명서와 입장문을 발표하고, 공정한 경선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탈당도 불사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원한 충남지사 후보’로 통하는 이명수 의원은 대전·세종·충남에 자신만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의원 중 하나다. 더구나 이명수 의원은 네 차례 당선 중 지난 2008년 18대 총선과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 후보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서는 자유선진당을 선도 탈당하여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통해 보수 통합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특히, 국민의힘에서 어떤 방식으로 충청권 컷오프 의원을 선정했는지는 모르지만, 국회의원의 기본적 책무인 입법활동에서 이명수 의원은 충청권 전체 의원을 통틀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지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 연속 299명과 300명 전체 국회의원 중 법안 발의 1위를 차지할 만큼 성실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천안-아산-당진 벨트로 이어지는 서북권 벨트에서 6명의 국회의원 중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당선되며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점도 간과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런 이명수 의원이 컷오프 된다면, 그런 기준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명수 의원을 충청권 의원 중 유일하게 컷오프 대상자로 결정했다면, 성실한 의정활동 등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는 안중에도 없고, ‘정치적 신사’로 통하는 점잖은 성품으로 인해 대야 투쟁력이 약한 점을 문제 삼지 않았나 싶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는 충남지사 출마의 길도 막혔지만, 先黨後私(선당후사)의 정신으로 기꺼이 충남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이명수 의원에게 공정한 경선은 고사하고, 충청권 컷오프 대상자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행태는 가혹하다 못해 너무나 비열한 처사다.

홍성·예산을 ‘보수의 철옹성’으로 만들며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홍문표 의원의 경선 포기 선언도 매우 석연치 않다. 우리나라 제헌 헌법의 초안을 기초한 현민 유진오 박사의 수행비서를 시작으로 일찌감치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홍문표 의원은 ‘농업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답게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후 2012년 19대 총선·2016년 20대 총선·2020년 21대 총선 등 4선을 하는 동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16년간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농업전문가로 통한다. 더구나 홍문표 의원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열린우리당 광풍이 몰아친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후보 중 유일하게 당선된 인물이다. 그런 홍문표 의원에게 경선 설명회 당일 동일 지역구 3회 이상 낙선자 감점 관련 적용으로 30% 감점 대상자로 통보한 것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온당치 못한 처사다. 홍문표 의원이 1988년 13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처음 출마할 당시는 지금과 같은 홍성·예산 지역구가 아닌 청양·홍성 지역구였으며, 1992년 14대 총선·1996년 15대 총선·2000년 16대 총선 출마 당시는 청양·홍성 지역구였다. 더구나 1988년 13대 총선 무소속 출마 이후 1992년 14대 총선·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지금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아닌 민주당과 일명 꼬마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것이었다. 홍문표 의원에게 낙선의 횟수를 굳이 물으려면,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꼬마 민주당 조순 후보가 통합하여 한나라당으로 출범한 이후인 2000년 16대 총선부터 따져야만 한다. 2000년 16대 총선조차도 지역구가 청양·홍성이었기 때문에 낙선 횟수에 포함시키면 안 되고, 홍문표 의원에게 낙선의 잣대를 적용하려면,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홍성·예산에 출마하여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에게 패배한 한 차례만 낙선 횟수로 포함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문표 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행태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홍문표 의원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들러리 서고, 이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서 못 하겠다. 파놓은 함정에 들어가는 것보단 내 소신을 분명히 밝히는 게 낫다”는 포효가 울림을 주는 이유다.

1심에서 직위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는 국민의힘 지역구후보자추천규정 당규 제4장 제14조 제7항을 무시하면서까지 ‘정치적 판결’이라는 이유를 들어 단수공천을 강행하고, 경실련의 현역 국회의원 300명에 대한 의정활동 및 도덕성 평가 결과 최하위와 경실련 선정 22대 총선 공천 배제 대상에 포함된 인물은 컷오프는 고사하고 경선 대상자로 올려주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시스템 공천이 과연 충청도에서 만큼은 유효한지 전혀 모르겠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시스템 공천 표방으로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기대 속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처럼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좋은 X이 아니라 덜 나쁜 X’을 뽑아야 되는 선거로 전락할 확률이 농후하다. 과연 ‘누가 누가 못하나’를 경쟁하는 충청권 여·야 공천 속에 오는 4월 10일 마지막에 웃게 될 정당이 어디일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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