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 22대 총선이 불과 50일 남짓 남았다. 거대 양당을 비롯한 각 정당이 순차적으로 공천자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공천자 윤곽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후보 등록을 불과 31일밖에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선거구 획정조차 하지 않는 거대 양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매우 따가울 수밖에 없다.

거대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정성호 의원과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비롯하여 문학진 전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이재명 대표 비선조직의 공천 개입 논란에 원로들까지 우려를 표명하는 등 ‘이재명 대표의 私薦(사천)’ 의혹이 지속되고 있으니 논외로 하고, 보수정당 계열 최초로 계량화된 공천룰을 발표하여 결과에 따른 공천을 약속한 국민의힘 역시 호기롭게 시작한 시스템 공천이 유명무실화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16일 밀실 공천 및 담합 공천의 원천 차단·질서 있는 세대교체 구현·엄격한 부적격 기준 마련 등 크게 세 가지 내용의 공천 대원칙을 발표하고, 현역의원 교체지수 및 조정지수 적용방법·공천신청자 부적격 기준·공천신청자 심사 평가 기준·경선 방식·경선 가산점 기준·경선 감산점 기준 등 세부항목을 규정한 공천룰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처럼 원대하게 시작한 국민의힘 시스템 공천이 龍頭蛇尾(용두사미)가 되어가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지역구후보자추천규정 당규 제4장 제14조 제7항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 받고 재판 중인 자는 국회의원 후보로 부적격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8월 1심에서 직위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정진석 의원에게는 ‘정치적 판결’이라는 이유를 들어 예외적으로 단수공천을 강행했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과 장동혁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공천관위원들의 입장에서는 정진석 의원에 대한 1심 판결이 정치적 판결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 대한 사법리스크에 대해서 앵무새처럼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당규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사항도 무시하면서까지 ‘정치적 판결’이라고 주장하며 특정인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태도는 이재명 대표 같은 사람에게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의 품격’마저 심히 벗어난 결정인 것 같다.

無用之物(무용지물)이 된 국민의힘 시스템 공천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발표된 충청권 공천에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윤창현 의원을 단수공천자로 발표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밀실 공천 및 담합 공천의 원천 차단을 위해 후보자 간의 지지율 차이가 현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윤창현 의원을 한현택 전 동구청장과 경선조차 붙이지 않고 단수추천을 해버렸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윤창현 의원을 단수추천 하려면, 윤창현 의원이 한현택 전 동구청장보다 현격한 차이로 경쟁력이 높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윤창현 의원이 한현택 전 동구청장보다 현격하게 경쟁력이 높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지역 언론인들이나 지역 정가에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에게 윤창현 의원 vs 한현택 전 청장의 경쟁력을 물어보면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조차 배제하고 윤창현 의원으로의 단수공천 강행은 한현택 전 동구청장의 반발로 인해 공천 파열음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의석 수 1석이 아쉬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대전지역 전체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천명한 시스템 공천이 허울 좋은 명분에 그치는 이유는 지역구 재배치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6일 경남지사를 역임한 김태호 의원에게 지역구인 산청·함양·거창·합천을 떠나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3선 도전에 나선 양산을 출마를 권고했다. 김태호 의원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여 양산을 출마를 선언했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8일 김태호 의원을 양산을 우선추천자로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 민심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양산을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에 맞서 지역을 지켜온 한옥문 후보의 반발이 거세다. 양산을 뿐만 아니라 밀양·의령·함안·창녕을 떠나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3선 도전에 나선 김해을로 지역구를 변경한 가운데, 역시 지난 18일 조해진 의원을 김해을 우선추천자로 발표하면서 기존 후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경쟁력을 감안하여 거물급 인사들에게 지역구 조정을 요청했을 경우는 해당 지역에서 표밭을 갈던 후보들과 공정한 경선을 통해 공천자를 결정해야만 한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경쟁력을 인정했을 만큼의 거물급 인사가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국민의힘 후보들과 경쟁하여 승리하지도 못한다면, 어떤 근거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지역구를 재배치한단 말인가? 더구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지역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거물급 인사라 하여 장기판의 말처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태도는 지역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따라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금이라도 지역구 재배치를 멈추고, 해당 지역 공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정해야만 한다.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각 당의 공천관리위원회는 당대표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 같다. 그래도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보수계열 정당 최초로 시스템 공천을 표방한 국민의힘의 공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는데, 지금까지 진행된 공천을 살펴보면, 실망 그 자체다. 당대표의 ‘私薦(사천)’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고도 시스템은 온데간데없는 국민의힘이나, 이런 식의 공천을 자행하려면, 앞으로 외부 인사들을 데려다 얼굴마담 격으로 요란하게 공천관리위원회를 꾸리지 말고, 그냥 당내 유력 인사들이 모여서 공천을 진행하는 것이 국민들을 향한 더 이상의 눈속임을 끝내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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