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충남 공주 출신의 정진석 의원을 신임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충청 출신의 중용이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정진석 의원 비서실장 임명은 한마디로 長考惡手(장고악수)에 해당되는 것 같다.
정진석 신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만 해도 ‘설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룸을 찾아 정진석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총선의 충청권 참패에 대한 처방을 잘못 내려도 너무 잘못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022년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열열하게 지지하며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정진석 의원의 신임 비서실장 임명에 대해 ‘아직도 눈높이를 모르시나 봐’라고 자조 섞인 비판을 쏟아내는 모습에서 이번 총선 민심을 반영한 인사로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고향인 충청에서의 참패가 뼈아프게 느껴졌을 것이고,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충청권 중진인 정진석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여 흐트러진 충청 민심을 수습하려 한 것 같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비서실장 임명은 충청인들에게 정진석 의원의 낙선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만 비칠 뿐 충청인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인사로는 상당히 미흡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향인 충청 민심을 다잡기 위해 굳이 충청 출신 중진의원 중에서 비서실장을 임명하려고 했으면,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충남 아산 출신의 ‘행정의 달인’ 이명수 의원이나 충남 홍성 출신의 ‘농업 대통령’ 홍문표 의원이 더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최소한 이들은 5선 고지를 눈앞에 두고 이번 총선 불출마를 통해 당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은 지난해 8월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직위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도 ‘정치적 판결’이라는 이유로 이번 총선에서 단수공천이라는 혜택까지 받았다. 특히, 정진석 의원은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여·청양을 끼고 있는 공주·부여·청양에서조차 낙선한 인물이다.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여·청양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낙선한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가 충청권에서 과연 얼마나 환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진보진영에서 신격화하고 있는 故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여 1심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정진석 의원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정진석 의원의 비서실장 임명 발표 이후 야권에서는 일제히 “윤석열 정부에 이렇게 쓸 사람이 없나?”라거나 “총선 외면이자 야당 인정하지 않는 인선” 등의 격양된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진석 의원은 그동안 ‘육모방망이’ 논란을 비롯하여 ‘세월호’ 망언과 ‘친일’ 발언 논란 등 여러 차례 口舌(구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표적 보수언론인 TV조선의 윤정호 앵커조차 “두루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참신하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에둘러 표현했을까?
무엇보다도 정진석 의원의 이번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자행한 납득할 수 없는 행태다. 당시 정진석 의원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 공천 배제’라는 前代未聞(전대미문)의 공천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율을 달리던 박성효 전 대전시장의 출마 자체를 원천 봉쇄한 바 있다. 당시 정진석 위원장이 주도한 공천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의힘 광역단체장 후보는 박성효 전 시장이 유일했다. 과연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 공천 배제’가 누구를 위한 공천룰이었는지 묻고 싶다. 유력 후보였던 박성효 전 시장의 불출마로 인해 경선을 거쳐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이장우 후보는 20대 대선 직후 불과 3개월도 채 되지 않는 시점에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호남·제주도·경기도를 제외한 국민의힘이 승리한 12개 시·도 중 가장 격차가 적은 불과 2.39%p 차이의 辛勝(신승)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취약지역인 유성구청장 탈환에 실패하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 공천 배제’라는 상식 이하의 공천룰의 여파는 이번 총선까지 이어져 대전 7개 선거구 모든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진석 의원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하여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지만, 이번 총선 낙선 후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처럼 19대 국회 전반기에도 차관급인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거쳐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되는 등 온갖 호사를 누린 바 있다. 또한 정진석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던 시기인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사무총장을 사임하고 새누리당 후보로 충남지사에 출마했으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8.26%p라는 큰 격차로 패배했다.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는 정진석 의원을 비롯하여 이명수 의원·홍문표 의원·전용학 전 의원 등이 출마했으며, 천안지역을 시작으로 9개 당원협의회를 순회하면서 후보자 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정진석 의원은 모든 지역에서 자신이 후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다름 아닌 정진석 의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던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진석 의원은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됐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당원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정진석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그 어떤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졌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만 하는데,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하여 말만 앞세웠을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점은 많이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충청 출신 대통령 탄생으로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충청인들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 집권여당 국민의힘을 냉정하게 심판했다. 하지만, 이번 회초리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충청인들의 애정 또한 많이 묻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비서실장 임명이 아쉬운 면은 많지만, 정진석 의원이 평소 고향 친구라고 떠들던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만큼 자신의 정치적 야심은 뒤로한 채 오늘 당장 물러나도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위한다는 각오로 忠言(충언)과 眞言(진언)을 통해 충청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一助(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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