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한파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12일 내년 22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정치권은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매서운 한파의 기승으로 전국이 움츠러들고 있듯이 여야 정치권도 집권여당 대표의 페이스북 사퇴·거대 야당 대표의 지속되는 사법리스크 등으로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 특히, 내년 22대 총선 출사표를 던진 인사들은 공천을 앞두고 작은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모습이다. 모든 선거에서 공천의 승패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듯이 여야가 내년 22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들 뿐만 아니라 유권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공천이 진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몇몇 특정 인물들에 의해 자행되는 고무줄 잣대 공천으로 인하여 낙천하는 후보나 유권자들이 실망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의찬 당 대표 특보의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예비후보자 심사 결과 ‘적격’ 통보 번복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는 지난 14일 정의찬 특보에 대하여 예비후보자 심사에서 ‘적격’ 후보로 통보했으나, 과거 학생운동 시절 민간인 고문치사 사건과의 연루가 논란이 되자 다음 날 다시 검증위를 개최하여 정의찬 특보에 대해 ‘부적격’ 판정으로 번복했다.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라는 이재명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측근인 정의찬 특보는 즉각 “당헌·당규 어디에도 없는 절차상 하자이자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마저 부여하지 않았다”며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나섰다. 무고한 시민이 죽은 사건에 연루된 정의찬 특보는 스스로 공천을 철회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데, 오히려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나서는 모습에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는 ‘예외 없는 부적격’ 기준으로 강력범죄·성폭력·음주운전·가정폭력·아동학대·투기성 다주택자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만약, 정의찬 특보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져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가 다시 ‘후보’ 적격 판정을 한다면,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국민의힘 역시 고무줄 잣대 공천은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헌·당규에도 없는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에 대한 공천 배제’라는 전대미문의 공천 기준을 만들어 당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의 해당 조항 수정 권고까지 무시한 공천관리위원회의 폭거를 자행한 적이 있다. 당시 당내 경쟁 후보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2배 가까운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박성효 전 대전시장은 경선 참여 배제로 인해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으며, 그로 인하여 국민의힘은 험지로 통하는 유성구청장을 탈환하지도 못했고,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호남·제주·경기를 제외한 전국에서 최소 격차인 2.39%p 차이로 辛勝(신승)을 거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정진석 의원의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이었다. 정진석 공관위원장은 당시 대전시장 공천 발표 후 “3번 낙선한 후보자에 대한 공천 배제 원칙을 정한 건 그야말로 정치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한 것”이라는 공천룰 결정 배경을 설명했지만, 정작 박성효 전 시장을 배제하고 대전시장으로 공천받은 사람은 국회의원 세 차례와 구청장 세 차례 등 총 여섯 차례 출마하여 세 차례 낙선 경력이 있는 이장우 현 대전시장이었다.

더구나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에 대한 공천 배제’라는 전대미문의 공천룰은 오로지 박성효 전 시장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괴산군수에 출마하여 당선된 송인헌 현 군수는 지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낙선을 시작으로 2017년 4.12 재보궐선거 낙선과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낙선하여 박성효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동일 지역 동일 선거구 3회 이상 낙선자에 대한 공천 배제’라는 조항에 해당됐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박성효 전 시장과 달리 공천장을 획득하여 지난해 6.1 지방선거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당시 지역 정가에서는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정진석 의원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보은·옥천·영동·괴산 지역구의 박덕흠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추정이 파다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왜 이런 고무줄 잣대로 공천을 자행하게 되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자에 대하여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만 할 것이다.

무릇 정치의 가장 큰 목표는 政在安民(정재안민), 즉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 지난 1995년 삼성그룹의 故 이건희 회장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기업은 2류라”고 일갈한 바 있다. 하지만, 故 이건희 회장의 일갈이 있은지 2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4류가 아니라 5류로 후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 내년 22대 총선 공천부터는 반드시 각 당이 고무줄 잣대 공천을 원천 차단하여 우리나라 정치를 일류로  탈바꿈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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