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난 11일 ‘<욱일기를 단 일본군이 이 땅에 진주한다고?>’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이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야권의 주요 공격 소재가 되고 있다. 급기야는 정 위원장 조부의 친일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여권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친일 프레임’에 휩싸이게 됐다. 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의 전체 내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정 위원장이 조선의 패망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몇 차례의 망언 논란을 야기한 것처럼 이번에도 線(선)을 넘어서는 표현으로 인해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정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조선의 패망 이유를 설명하며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 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면서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라는 내용이 담긴 글을 게시했다. 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은 을사5적의 우두머리로 통하는 이완용이 1905년 5월 30일자 매일신보에 기고한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키위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다”라는 글과 비교되면서 식민사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 위원장의 표현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조선 왕조는 무지하고 무능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간과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선조들이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일제에게 핍박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었던 것처럼 우리 민족 자체적으로 왕조가 변경됐든지 아니면 중국의 신해혁명처럼 우리나라 역시 민중 봉기를 통해 왕조를 허물고 공화제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을 것이며, 6.25 전쟁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남북분단의 상황도 초래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일부터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 ‘친일 국방’이라고 비판한 이후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라든지 “좌시할 수 없는 안보 자해”라는 상당히 왜곡된 비판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정 위원장이 반박을 해야 하는 점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단지 1/300의 국회의원이 아니고,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무게감 있게 이재명 대표의 여론 호도를 촌철살인으로 제압했어야만 한다. 정 위원장이 굳이 우리 국민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일본의 조선 침략이 어쩌면 당연했다는 듯한 태도의 페이스북 글 게시는 스스로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정 위원장이 이재명 대표의 한미일 군사훈련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반박하려면, 국민들에게 민감한 조선 패망의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대표의 연일 계속되는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사법 리스크 방지 차원이라”고 꼬집는 것이 국민들의 호응을 쉽게 얻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정 위원장은 지난 2017년 5월 19대 대선 패배 이후 열린 자유한국당 중진의원 기자 간담회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육모방망이도 뒤통수를 빠개버려야 한다”라는 막말을 쏟아냈으며, 지난 2017년 9월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로텐더홀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중 당시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이 “당신들이 보수정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하자 “야, 하태경 너 이리 와바. 네가 어떻게 보수를 입에 올려. 나쁜 자식아”라고 발언한 후 다른 의원들과 대화 도중 “아주 죽여버릴려다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한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이후 열린 비상의원총회 참석 직후 회의 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세월호처럼 침몰했잖아”라고 발언하기도 했으며, 세월호 5주기였던 2019년 4월 16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다”라는 글을 게시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당 윤리위원회에서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전적이 있는 정 위원장이 이번 페이스북 글로 인해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야권이 집권여당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앞으로도 또 다른 실언으로 여권의 위기를 자초할까 걱정스럽다. 제발 정 위원장이 전당대회 전까지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무게감 있게 당을 이끌어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뒷받침하면서 정제되고 절제된 발언과 표현으로 야권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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