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판소리 여섯 마당을 소설로 정리한 신재효의 ‘춘향전’ 중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로 금의환향하여 탐관오리 변학도를 응징한 이몽룡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춘향이를 내려다보며 “오늘밤 내 수청을 들겠느냐?”라고 요구하자 춘향이가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최근 지역 의회들이 앞 다투어 의정비 인상을 단행하면서 평소에는 그렇게 으르렁대던 여·야가 의정비 인상 앞에서는 여·야 따로 없이 의견 일치를 보이는 모습에 춘향이의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의정비 인상을 단행한 대전시의회도 공무원 보수인상률 1.4% 수준의 인상안을 올렸다. 대전시의회 의정비는 전국 17개 광역의회 중 5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인근 충남도의회가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 등을 고려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지난해와 의정비를 동결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제9대 전반기 대전시의회의 출범 이후 행태를 보면, 대전시의회의 의정비 인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대전시의회는 회기 중 의회의 首長(수장)이 집행부의 首長(수장)과 동반 해외출장을 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교육위원회가 부결시킨 ‘대전광역시교육청 유아교육비 지원 조례안’을 이장우 시장의 간부회의 발언 이후 복지환경위원회에서 ‘대전시 유아교육비 지원 조례안’ 기습 상정을 통해 가결시켜 ‘집행부 2중대’라는 비판을 자초했으며, 지난 9월 26일 발생한 현대아울렛 화재로 인해 취소했던 제주도 연찬회를 최근 은근슬쩍 다시 추진하다 들통이 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 의정비 인상을 단행하는 모습에서는 씁쓸함을 넘어 기가 찰 노릇이다.

대전지역 기초의회의 의정비 인상 역시 한마디로 가관이다. 지난달 동구의회는 의원의 월급에 해당하는 월정수당 월 100만원 인상안을 올렸고, 유성구의회와 중구의회도 각각 월 60만원과 월 53만원 인상안을 올렸으며, 오락가락하던 서구의회도 70만원 인상안을 올렸다고 한다. 특히, 제9대 의회 전반기 원구성 파행으로 지각 개원한 대덕구의회마저 80만원의 의정비 인상안을 올렸다는 소식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지각 개원으로 인해 구민들에게 피해를 준 것을 감안하여 의정비를 동결 내지 인하하지는 못할망정 대전 5개 기초의회 중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올리는 대덕구의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대전지역 5개구 기초의회 모두 주민공청회나 전화면접조사를 통해 의정비 인상을 최종 결정한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평소 의정활동이 의정비를 인상해도 되는지 먼저 自問(자문)해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자칫 주민공청회나 전화면접조사가 의정비 인상을 위한 꼼수로 전락해 버린다면,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호흡하면서 同苦同樂(동고동락)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인 지방의원들은 말 그대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의원들이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민생 현장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행태는 지탄을 넘어 지방자치 무용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지방의원들이 최소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면, 주민들로부터 만족할 만한 의정활동의 성적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과연 대전지역 광역의회나 기초의회 중 주민들로부터 납득할 수 있는 의정활동의 성과를 거둔 의회가 있나 싶다. 부디 선출직 공직자들이 선거 때만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떠들지 말고, 재임 중 뿐만 아니라 임기가 끝난 후에도 ‘국민의 공복‘이었다는 마음가짐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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