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법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법학도 출신의 K 교수는 석사와 군 복무를 마친 30대 초반 새로 신설된 정치외교학과 조교를 지냈다. 학과 신설이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교수도 3명에 불과했지만, 5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교수들의 알력으로 인해 커리큘럼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학과장은 조교였던 K 교수에게 모든 교수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청했으며, 학과장의 지시를 받은 조교 K 교수는 나머지 교수 2명에게 교수회의 개최를 알리는 일이 주요업무가 되다시피 했다. 어느 날 교수회의에 학과장을 제외한 2명의 교수 중 1명이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히 2명의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1명의 교수는 어떠한 통지도 없이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나중에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해당 교수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학과장에게 주장했다. 억울했던 법학도 출신 조교였던 K 교수는 다음에 열리는 교수회의를 알리기 위해 지난번에 불참했던 교수에게만 내용증명을 통해 교수회의 사실을 알렸다. 조교였던 K 교수로부터 교수회의 개최 사실을 전화가 아닌 내용증명을 통해 전달 받았던 직전 교수회의 불참 교수는 학장을 찾아가 “학장님! 저는 우리 과 조교가 무서워서 앞으로 학교에 못 나오겠습니다. 정치외교학과가 정치적으로 풀어야지 교수회의 참석을 법학과 출신이라고 법적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며 하소연했다. 교수의 하소연을 들은 학장은 당시 조교였던 K 교수에게 단과대학 내 다른 부서 이동을 종용했고, 조교 신분이었지만 몇 차례의 학장 지시에 불응하던 K 교수는 결국 다른 부서로 이동했었던 적이 있었다며 자신의 조교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치권이 아닌 대학에서도 정치외교학과냐 법학과냐를 통해 정치적 해결이냐, 법적 해결이냐를 나누는 상황인데,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요즈음 상황은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집권여당 대표가 사상 초유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것도 모자라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고, 장외 투쟁에 나서면서 대통령 핵심 측근들과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에게 이준석 전 대표를 지칭하는 내용의 ‘내부총질’ 문자메시지가 국회 사진기자단에 포착된 이후부터 총구는 소위 ‘윤핵관’을 벗어나 윤석열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상황이다. 지난 3월 9일 치러진 20대 대선을 앞두고도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간의 대립에 이골이 난 국민들은 이제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집안싸움에 피로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내홍은 좀처럼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태 해결은커녕 양보나 타협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에 반발해 지난 10일 가처분 신청을 전자로 접수한데 이어 16일에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국민의힘을 상대로 최고위원회·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 의결 등에 관한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당내 문제가 결국은 법적 판단으로 결정될 위기에 놓였다. 집권여당의 이런 행태는 코로나19·폭염·폭우로 인한 수해 피해 등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시름만 더욱 깊어가게 할 뿐이다.

이미 대통령의 ‘내부총질’ 문자메시지 내용이 집권여당 대표 직무대행이라는 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전 국민들에게 공개된 상황이고, 징계를 받은 대표는 대통령을 향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도(度)를 넘어서는 비난을 퍼붓는 상황에서 청년 지지층마저 ‘네 편 내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양측의 핵심 지지층만을 제외하고는 진절머리를 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 눈에는 이들의 싸움이 ‘권력 쟁탈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행태는 그런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욕에만 힘을 쏟는 눈치다. 결국 집권여당의 이러한 ‘뻘짓’에 함박웃음을 짓는 집단은 오직 제1야당과 그들의 지지자들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범 100일 기자회견은 당원권이 정지된 당 대표 기자회견에 묻히고 마는 작금의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사태는 심각해도 너무나 심각한 위기 그 자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야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고, 앞으로 1,720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들에게 성공한 정부로 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만 한다.

앞에서 언급한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과 비슷한 연유로 정당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적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집권여당 국민의힘으로서는 서로의 잘잘못을 떠나 국민들 보기에 너무 민망한 일이다. 법학도 출신으로서 평생 검사 생활만 한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이제는 법조인의 이미지를 벗어나 정치인으로서 비약적인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윤석열 정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성공한 정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틀 전 지난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60대 중순의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두 시간 동안 운전을 하던 중 윤 대통령에게 실망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대다수의 보수층 지지자들이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지금까지의 그릇되고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지만, 이번 싸움은 양측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은 어떤 잘못이 없더라도 한 나라의 국정책임자로서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귀결되는 것이며, 모든 매듭은 최종적으로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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