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국방부가 육사 교정에 설치된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한다는 소식이었다. 국방부의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제거 소식은 여야를 넘어 보수진영 내에서도 찬반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찬성하는 국방부는 지난 8월 28일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아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정예장교 양성기관인 육사 내에 흉상이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반대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8월 27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일본군과 37회나 전투를 벌인 공적과 소련 공산당 가담은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의 무장투쟁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편의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종찬 회장은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 무훈을 세웠고, 자유시 참변도 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독립군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이종찬 회장은 홍범도 장군이 1922년에 코민테른의 극동민족대회에 참여한 바도 있으나,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쫓겨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사망하였고,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투쟁한 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홍범도·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 육사 설치는 당시 반대 진영에 대한 설득 등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지금에 와서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아 육사 내 흉상 철거 카드를 뽑아든 것은 괜한 긁어부스럼이다. 당장 진영 간의 대립 뿐만 아니라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광복회장을 비롯하여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전 의원·매헌 윤봉길 의사의 손녀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 등 보수진영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일고 있는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치켜세우는 발언으로 보수진영과 중도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 선생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1948년 남북협상 때 북으로 월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기여했으며, 우리나라의 검찰총장 겸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국가검열상과 고용노동부 장관에 해당하는 노동상 등의 고위직을 수차례 역임하였고, 특히 6.25의 공훈으로 김일성으로부터 최고급 훈장까지 받은 사실로 인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점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바 있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은 비록 소련 공산당에 가담한 사실이 있으나, 일본군 정규군을 최초로 대패시키며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고, 청산리 대첩에서도 큰 전공을 세웠으며, 자유시 참변을 당한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재판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22년에 코민테른의 극동민족대회에 참여한 바도 있으나,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쫓겨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지난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사망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에 반대한 적도 없고,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에 협조한 적도 없으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1962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2등급(대통령장)을 수여한 바 있으며, 이후 역대 모든 정부에서도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폄하했던 기억이 없는데, 뜸금 없이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가 이런 논란을 야기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섯 분의 흉상 철거 이야기가 불거졌을 때 “공산주의자의 흉상을 육사에 둘 수 없다”는 안이한 태도를 보인 점은 무척 아쉽다. 국방부는 논란이 불거지고 나서야 다른 장소로 옮긴다는 식의 해명에 나섰으나,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처음부터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지 말고, 대한민국의 독립군으로서 독립전쟁의 영웅인 다섯 분의 흉상을 독립기념관이나 그에 걸맞은 장소로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제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아도 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경찰 이첩 과정에서 국방부의 외압을 주장하면서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되었고, 군 검찰은 지난 8월 30일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군사법원은 지난 1일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국방부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정예강군 양성에 전심전력해야 할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의 논란을 자초한다면, 국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확실한 명제 앞에서 1945년 8.15 광복 이후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수립에 기여했거나, 6.25 전쟁에 참전하여 북한을 이롭게 한 자들에게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주적‘의 잣대를 들이대야만 한다. 굳이  일제강점기 하에서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고, 조국의 광복도 보지 못한 채 사망한 인사들에게까지 전선을 확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국민의힘이 내년 22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선거라는 것이 자신의 진영 소위 말해 ‘집토끼’를 확실하게 잡고, ‘스윙보터’인 소위 ‘산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에 비추어볼 때 홍범도 장군의 육사 흉상 철거 논란은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꾀할 수 있지만, ‘스윙보터’인 중도층의 표심을 이반시킬 수 있어 내년 22대 총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라면, 홍범도 장군의 육사 내 흉상 철거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과 호흡을 맞추어 광주광역시가 추진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팔로군행진곡’과 북한의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 씨의 기념공원 저지에나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결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라면, 지난 2018년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에서 제작한 국방TV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홍범도 장군의 영상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홍범도 장군의 유트브 게시물을 근거로 국방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설득에 나섰어야만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방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국방부가 국군통수권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우려스러운 행보를 멈추고, 괜한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계획을 철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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