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모든 세대에게 아픔과 절망 안겨

코로나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견뎌야 하나. 모두들 나라를 잃은 표정이다. 코로나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흐르는 세월 속에 변해가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지난 2년 간 우리 사회는 너무 변했다.
정부는 코로나를 잡는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복했다.
많은 것이 멈췄고 변했다. 불안해서 사람들은 만남을 꺼린다.
공생의 삶은 각자도생으로 변했다.
변한 건 또 있다. 그렇게 자랑하던 K방역은 무너졌다. 무너진 만큼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
우리 정치 상식의 하한선이 없다는 생각이다.
'대선'을 앞두고 확증편향의 헛소리가 난무한다. 언론 또한 편을 가르고 그 수작에 놀아나고 있다.
얻은 게 있다면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이다. '강제된 일상'으로 절제된 삶은 그나마 수확이다.
'집콕' 시간이 많다보니 '멍 때리기' 재미도 터득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분의 덕분이다.
그동안 우리는 모임에 열중하며 사람들과의 유대를 중시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인간관계를 타인 의존에서 자기 의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 나는 시골 출신이라 보릿고개의 추억이 아련하다.
당시 그 시절에 비교해도 코로나 펜더믹은 지옥이다.
보이지 않는 세균과 기약 없는 싸움은 가난보다 힘들다. 청춘인 70, 80년대는 군부독재로 암울했다.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 90년대는 IMF 환란을 겪었다. 그때는 허탈했으나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코로나 방역의 환영(幻影)은 어떠한가. 46번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은 파산 직전이다. 공권의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우울에 시달린다. 자살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신종 인플렌자, 사스보다 고약한 코로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세상의 리셋'이 시작된 느낌이다. 원격교육·재택근무가 자연스런 삶이 됐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급변했다. 사람 자체가 코로나 감염의 숙주가 된 것이다.
면역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 모두들 감염 숙주를 멀리하며 '인간불신'이 팽패하다.
가뜩이나 가상세계와 AI, 빅데이터, 로봇 등 디지털 세상이 아니던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존엄이 사라지고 있다
뿐인가. 사람의 도리인 관혼상제도 퇴색했다. 거리두기는 마침내 마음두기로 이어졌다.
오늘도 고향 후배의 여혼이 있는 날이다. 코로나가 아니면 마땅히 식장에서 축하할 일이다.
그곳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정담을 나눴을 것이다. 이제는 축하 전화와 축의금만 송금하면 그만이다.
자고로 예(禮)는 예로, 정(情)은 정으로 갚는다 했다. 이런 양속은 옛말이 됐다.
축하와 위로의 경조금은 빌린 돈 갚듯 곗돈 같은 느낌이다.
세대별 아픔도 천태만상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부분 은퇴했다.
이들은 결혼하고 30~40년간 자식과 부모를 부양했다. 이제 여가생활로 노후를 즐길 나이다. 하지만 코로나 복병을 만나 은퇴 후 삶이 엉망이 됐다.
돌아보면 빡센 군대생활을 했다. 선임이 돼서는 민주군대로 후임들 눈치를 보다 제대했다.
직장에서도 선배들의 편달에 시달렸다. 퇴직 말년에는 '꼰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퇴직 후 돌아온 건 황혼이혼과 자식들에게 홀대를 받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노년 초입에 코로나를 맞닥뜨렸다. 박복하기 짝이 없다.
고통스럽기는 20, 30대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전문대 생들이 졸업했다. 코로나로 입학해서 오미크론에 졸업했다.
물론 신입생 환영회, MT, 축제, 동아리 활동도 없었다. 선후배의 만남, 미팅의 낭만도 없었다. 기능학과는 실습을 대충 때웠다. 동창생 얼굴도 모른다. 학창의 추억도 없다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난이 절벽이다. 코로나블루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4년제 대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30대 청년들은 어떠한가. 취업에 목숨을 건다. 취업했다해도 결혼을 선뜻 하지 못 한다. 만만찮은 집값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출산을 걱정한다. 난임으로 마음고생도 크다. 아이를 낳으면 양육과 교육이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아이들이 마주한 세상은 어땠을까.
수일 전 찬바람이 불던 이른 아침 광경이다.
임시 선별검사소에는 PCR검사를 받기위한 줄이 길다. 유치원생 여럿 아이들이 부모와 동행했다.
유모차에 담요를 뒤집어 쓴 유아들도 눈에 띄었다. 놀이터에서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코를 헤집고 입안을 휘젓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하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빚어진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다시 출발, 행진을 알리는 3월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대선' 둘 다 희망 없어 보인다
전 정권과 다름없이 정상과 비정상이 넘나드는 혼돈스런 세상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자조와 비탄에 빠져 절망해야 하나. 수수(愁愁)로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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