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하게 열린마음일 때 '행복'

엊그제 고교 친구들과 문경새재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코로나로 모임을 갖질 못하다가 3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60여 명의 친구들이 서울에서 두 대의 버스에 나눠 문경으로 내려왔다.
나는 대전에서 출발, 오전 10시에 문경새재공원 초입에서 합류했다.
주차장에서 기념촬영 한 뒤 문경새재 1관문에서 2관문까지 산행했다.
2관문까지 산사 진입로처럼 평탄했다. 그러니 산책이라야 옳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몇몇 친구는 혈과 기를 돋는다며 맨발로 걸었다.
이를 보고 한 친구는 그래야 집에서 밥을 얻어먹냐고 놀렸다.
무엇보다 30여 년 기자생활을 마친 A. B와의 하산의 감회가 남달랐다.
험난한 세월을 흔들리지 않고 완주한 대견함이었으리라.
무심하게 걸어도 동병상련 고역(苦役)을 공감하니 그랬을 것이다.
나는 20여 년 전, 가족과 문경에 함께 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문경새재가 왜 새재인지 그 유래를 몰랐다.
공원 안내문을 보고 문경새재에 대해 알게 됐다.
문경새재는 충북 괴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사이를 잇는 고개다.
해발 632m 조령산을 넘는 고갯길이다. 한국 아름다운 길 100선(選)에 선정됐다.
곳곳에 조령(鳥嶺), 조곡(鳥谷)이란 표현들이 많아 우리말로 새재임을 알았다.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란 의미다. 새로(新) 난 고개란 설도 있다.
옛 선비들이 조령을 넘으면 경사(慶事)를 듣는다고 해서 문경(聞慶)새재이다.
또 새처럼 비상한다는 속설도 있으니 영험한 문경새재가 아닐 수 없다.
선비, 보부상들도 이런 바람으로 험준한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벼슬과 재물의 애환이 깃든 고갯길이다.
영남(嶺南)이란 지명도 조령, 추풍령의 남쪽이란 의미란다.
문경세재를 걸으면서 길의 여러 의미를 생각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누군가와 동행(同行)에 있다.
이번 모임에서 2학년 때 같은 반(班) C를 졸업 후 처음 만났다.
국내 유수 건설업체에서 해외사업을 하다보니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45년 만에 보는 친구인데도 한 잔 술로 단박 서먹함을 지웠다.
이렇게 편하고 막역해서 고향 친구, 고교 동기생이 좋은가 보다.
야유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 갈 것이다.
우리의 인생길은 어떠한가. 인생은 삶의 여정이다.
혹자는 인생을 마음의 여행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소풍 온 듯한 삶이 잘 사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 세상 살아내기란 그리 녹녹지가 않다.
내 자신도 돌아보니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됐다.
그래도 기쁨과 행복은 가족과 함께 할 때다.
물론 기쁨과 행복만큼의 곡절도 없지는 않다.
사람들은 말한다. 상처를 준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하나같이 5촌 이내 혈족이거나 친한 지인들이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고뇌의 연속이다.
이러니 어찌 하겠는가. 인생이 외롭지 않으려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한다.
인생 쓸쓸하지 않게 보내려면 좋은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말년에 고독해지지 않으려면 가족과 혈연과의 유대는 필수다.
나이들며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 자신이 준비할 게 있다.
그것은 스스로 가슴 따뜻하고 열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려면 '마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의 길을 바르게 걷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보이는 길을 걷는 것은 쉽다. 보이지 않은 마음의 길은 생각보다 힘들다.
이를테면 가장 힘든 길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마음의 길이다.
한 자(尺)에 거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멀고 힘든 것이 '마음의 거리'다.
이런 만큼 마음의 길은 매일 마음을 추슬러야 이를 수 있다.
이순(耳順)이 지나면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살피고 유념해야 한다.
매일 밤 진돗개 성화에 못 이겨 산책에 나선다.
바람 소리, 물 소리, 개구리 울음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도 함께하는 고요한 관조의 시간이면 그만이다.
이렇게 천변을 걷다보면 금계국, 개망초, 붉은 토끼풀이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즈막히 답했다. 마음에 드는 벗, '맑은 복(福)', 울안에 천 그루의 꽃과 나무를 소망한다고.
매일 산책하면서 얻은 깨달음이고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