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주년 제헌절이 하루를 지났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제헌 의원들이 두 달이 지난 7월 17일 우리나라 헌법 공포를 기념하여 국경일로 제정한 제헌절이지만, 제21대 후반기 국회는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된 여야의 밥그릇 싸움에 ‘국회 원구성 협상 타결‘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결국 제헌절마저 넘기면서 제74주년 경축식을 무색하고 만들고 말았다. ‘국회 원구성 협상 타결‘도 이루어내지 못한 가운데서도 제74주년 제헌절 경축식을 진행하는 여야 의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이들이 과연 제헌절 제정의 의미인 민주주의 수호와 헌법 제정의 가치를 늘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21대 국회는 전반기 국회 개원 전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낳았다. ‘87 체제 이후 역대 최장의 ‘지각 개원’이라는 오명을 남긴 바 있는 21대 국회는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도 여야 합의가 아닌 여당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하는 파행을 빚으면서 우리나라 헌정사에 매우 큰 오점을 남긴 바 있다. 21대 후반기 국회 역시 야당 단독으로 국회의장이 선출될 상황이 연출됐지만, 다행히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과 같은 파국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21대 후반기 국회는 국회의장단 선출에서만 파국을 면했을 뿐 원구성 협상 타결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야는 지난 12일 여야 원내지도부가 ‘제헌절 전 원구성 협상 타결’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결국 공염불로 끝나고 말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헌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가 지나치게 과거 문제에 매달리거나 당내 갈등으로 허송세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고 호소했지만, 여야는 마이동풍(馬耳東風) 격으로 자신들의 입장만 앞세우고 있다. 코로나19의 재유행 조짐으로 많은 국민들은 민생 법안 통과를 오매불망 바라고 있지만, 여야는 국민들의 시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여야는 오로지 자신들이 반드시 가져가야만 하는 상임위원장 자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여야 지도부 스스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타협과 협상을 “21대 후반기 국회에서는 기대하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선전포고하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21대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여야는 지난 3개월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첨예하게 대립했으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을 여야 동수로 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위원장을 맡는 방식으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구성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배분 문제가 협상 막판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원구성 협상 타결에 애를 먹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 둘 중 하나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고, 더불민주당은 쟁점 사안이었던 법제사법위원회를 여당에 양보한 만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모두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여야가 하나씩 나누어 가지면 된다고 생각되지만, 여야 모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다루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나, 권한이 막강해진 경찰청을 관할하는 행정안전위원회를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여야가 원구성 협상을 진행하면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많은 국민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여야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야 모두 원구성 협상 결렬이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여야 중 누가 민생입법을 가로막고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21개월도 채 남지 않은 22대 총선에서  반드시 표로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더구나 이번 제74주년 제헌절 경축식에는 여야 모두 당원들이 작접 선출한 당 대표가 자리하지도 못했다. 국민의힘은 사상 초유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준석 대표를 대신하여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으로 참여하였고, 20대 대선 패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은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대표를 대신했으며,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기라도 하듯 원구성 협상마저 타결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역대 이런 제헌절 경축식이 있었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2004년부터 주 5일 근무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2008년부터 법정공휴일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된 이후 제헌절의 의미가 점점 더 희박해지는 가운데, 여야의 밥그릇 싸움으로 제헌절의 의미를 더욱 퇴색시킨 제74주년 경축식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통이 터진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하루 빨리 직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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