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모든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칙이자 최고규범이며 근본법이고 기본법이다. 우리나라의 모법(母法)에 해당하는 연방국가 독일의 경우 각 Land(란트)마다 헌법을 의미하는 Verfassung(페어파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일 연방헌법의 경우는 Verfassung(페어파숭)이라는 표현 대신 기본법을 의미하는 Grundgesetz(그룬드게제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독일 연방헌법이 Grundgesetz(그룬드게제츠)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헌법이 국가의 기본법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대다수 국가의 헌법 개정 절차는 일반 법률 개정 절차와는 달리 까다로운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이 국가의 토대를 만들고 다지는 기본이기 때문에 권력자에 의해 임의로 바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국가에 헌법이 있듯이 정당에는 당헌(黨憲)이 존재한다. 당헌(黨憲)은 말 그대로 정당의 헌법으로서 최고규정이자 근본규정이며 기본규정이다. 따라서 국가의 헌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당헌(黨憲) 개정 역시 특정인에 의해 임의로 변경되는 것은 당연히 지양(止揚)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8.28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꾸리게 될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당헌 개정 문제로 시끄럽다. 지난 2020년 8월 28일 개정된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80조 제1항으로 인해 오는 8.28 전당대회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에 선출되더라도 검·경 수사결과에 따라 당원권이 정지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80조(부패연루자에 대한 제재) 제1항은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 의원의 주장처럼 이 의원을 향한 검·경 수사가 정치탄압으로 인정되어 중앙당윤리심판원이 받아들인다면, 당헌 제80조 제3항에 따라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지만, 이 의원을 지지하는 그룹에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아예 당헌 제80조 제1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80조 제1항 개정 움직임에 대해 이재명 의원과 당 대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용진 의원과 충남 아산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강훈식 의원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 의원은 “개인 위험이 당의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당헌 제80조 개정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반면, 강 의원은 “‘기소되면 직무 정지’가 아니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정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얼핏 보면 강 의원의 주장은 ‘당헌 개정’ vs ‘당헌 개정 반대’에서 나름대로의 중재안을 제시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자인 이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7일까지 진행된 강원·대구·경북·제주·인천 지역 권리당원 투표에서 이 의원은 누적 득표율 74.15%(3만 3344표)를 기록하며 압도적 1위로 당 대표 선출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원을 지지하는 그룹에 의해 당헌 제80조 제1항이 개정된다면,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당헌 개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더불어민주당은 특정인의 ‘사당화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일 대전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 초청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이 의원은 “최근 들여다본 당의 모습은 장기계획도 없고,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다. 방향도 잘 모르겠고, 책임지는 세력 또한 없으며, 당장 닥친 일을 해내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지만, 이 의원의 극렬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이 말에 수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당장 “지난 3월 9일 대선에서 패배했는데, 후보로서 어떤 책임을 졌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이 의원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 중인 의혹만 10개나 되는 이 의원은 20대 대선에서 패배한지 불과 3개월도 안 돼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대선 패배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이 의원이 20대 대선 패배를 통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지난 6.1 지방선거 참패의 단초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세력 또한 없다”고 운운하며, 당 대표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의 당원들이 이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이상 당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이 의원이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의 당헌 제80조 제1항 개정 움직임에 부작위로 일관하면서 ‘사당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당 대표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검·경의 수사가 정치탄압이라는 주장을 관철시켜 당헌 제80조 제3항을 통해 중앙당윤리심판원의 구제를 받아야만 한다. 최소한 이 의원이 자신의 이해득실 관계에 따라 당헌(黨憲)이 개정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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