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국이 혼란스럽다. 전직 국정원장 2명이 서해 피살 공무원 관련 첩보 무단 삭제 혐의와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 합동조사 강제 조기 종료 혐의로 자신들이 몸담았던 국정원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해 6월 만 36세의 나이로 제1야당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이준석 대표는 20대 대선 승리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압승을 이루어내고도 ‘성 상납 증거 인멸 교사’ 등의 의혹으로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대전시에서는 민선 8기가 출범한지 불과 열흘 남짓 만에 고위공무원 10명에 대한 전례 없는 대기발령이 이루어졌다. 이장우 시장은 지난 4일 2급 지방이사관 양승찬 시민안전실장을 비롯하여 3급 지방부이사관 2명·4급 지방서기관 4명·5급 지방행정사무관 3명 등 10명의 공무원에 대한 전격적인 대기발령을 단행했다. 지난 1989년 1월 1일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대전직할시로 승격한 이후 민선 7기까지 대전시에서 이런 규모의 대기발령이 단행됐던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대전시청은 그야말로 이장우 시장의 대규모 대기발령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다. 더구나 이장우 시장은 대규모 대기발령에 이어 지난 7일에는 밤 9시를 넘겨서 지방행정·전산주사급 직원 5명에 대한 전보 발령까지 단행했다. 취임 이후 불과 4일 만에 대규모 대기발령을 단행한 것도 모자라 어떤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 있어서 일과시간 이후 급작스럽게 전보 조치를 단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일과시간 이후 밤늦은 시간의 전보발령으로 인해 인사이동 사실조차 모르고 전임 부서로 출근하는 촌극이 빚어지기까지 했을까?
이장우 시장은 대기발령 다음 날 5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번 인사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을 텐데, 기존 돌려막기식이나 소수가 인사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배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이장우 시장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공무원이나 시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장우 시장의 대규모 대기발령과 밤늦은 시간의 전보발령으로 대전시청 공무원들만 싱숭생숭할 뿐만 아니라 출범한지 열흘 남짓한 민선 8기 대전시정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 역시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이장우 시장은 지난 6.1 지방선거 기간 내내 자신의 최대 강점을 추진력과 정치력이라고 자신감 있게 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장우 시장이 이번 대규모 대기발령이나 일과시간 이후 급작스러운 전보 조치를 자신의 추진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수사 중이거나 법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0명의 공무원에 대해 대기발령을 단행한 것은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한 망신주기를 통해 조직에서 축출해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
더구나 이장우 시장이 아무리 추진력과 정치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손과 발이 되어줄 공무원들이 이번 대기발령을 지켜보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일관한다면,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장우 시장은 지난 2006년 민선 4기 동구청장 취임 당시에도 부구청장이 작성한 인사안을 뒤집으면서 공직사회에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4년 후 재선 실패의 원인으로 크게 작용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허태정 전 시장에게 불과 2.39%p(14,480표) 차이로 신승(辛勝)을 거두고 민선 8기 대전시장에 오른 이장우 시장은 민선 4기 동구청장 재직시절 청사 신축으로 인한 동구의 재정 파탄 책임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로 유죄판결을 받은 부분에 대해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식의 인사발령은 대전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장우 시장 본인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민선 8기 대전시정을 안정 속에 성공적인 도약을 꾀하고자 한다면, 이장우 시장은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인사발령으로 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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