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성어 過猶不及(과유불급)이란, 論語(논어) ‘先進篇(선진편)’에 나오는 말로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지난 9월 26일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앞으로 더욱 권력이 비대해질 경찰이 최근 過猶不及(과유불급)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영등포경찰서가 지난 2일 오후 4시경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자택 인근에서 긴급 체포한 것이다. 그것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이진숙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장에서 자동 면직된 지 불과 하루 만이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이 긴급 체포됐을 당시에도 대다수 법조인들은 “과연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대다수 법조인들의 우려는 불과 50시간도 채 안 돼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경찰의 체포가 부당하다”며,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하였고, 서울남부지방법원 김동현 영장당직 부장판사는 4일 오후 4시부터 약 1시간 20분 정도 양측의 의견을 청취한 후 이진숙 전 위원장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사를 인용했다. 그래서 이진숙 전 위원장은 긴급 체포된 지 불과 50시간 만에 전격 석방되었다.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진숙 전 위원장의 체포적부심사를 인용하면서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하는 인신구금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점·심문과정에서 피의자가 성실한 출석을 약속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현 단계에서는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물론 김동현 부장판사는 경찰 수사 필요성이나,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까지는 부정하지 않았고, 이진숙 전 위원장 측이 정당한 불출석 사유로 주장한 국회 필리버스터 현장 참여 등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체포적부심사 인용으로 석방되자마자 “대통령 비위를 거스르면 당신들도 유치장에 갈 수 있다는 함의가 여러분이 보시는 화면에 담겼다”면서 “경찰·검찰이 씌운 수갑을 그래도 사법부가 풀어줬다”며 “대한민국 어느 한구석에는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 같아 희망을 느낀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석방으로 경찰은 이래저래 체면을 구기게 됐다. 특히, 며칠 전까지 장관급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인사에 대해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도 없는 상황에서 긴급 체포까지 강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여론의 질타가 매섭다. 더구나 이진숙 전 위원장이 긴급 체포되던 지난 3일 개천절은 본격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첫날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체포적부심사 인용에 따른 50시간 만의 석방은 추석 밥상에 고스란히 오를 확률이 높고, 경찰을 향한 민심의 싸늘한 반응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연 경찰의 이진숙 전 위원장에 대한 긴급 체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을 흔히 ‘민중의 지팡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진숙 전 위원장의 긴급 체포 같은 일이 발생하면, 경찰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경찰은 검찰이나 법원과 달리 국민들의 생활과 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권력기관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더욱 비대해지고 있는 경찰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권위주의 정부 시절 ‘권력의 몽둥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으려면, 앞으로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는 논란을 자초하는 행보를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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