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명운을 판가름할 20대 대선이 정확히 6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중요성과 비례하여 여러 언론기관의 의뢰로 진행된 전화면접조사 12건과 ARS조사 17건 등 총 29건의 여론조사 결과가 2022년 새해 벽두부터 쏟아지고 있다. 특히, 충청권에서도 수십 년 동안 염원한 ‘충청대망론’이 이번 20대 대선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충청인들의 ‘충청대망론’에 대한 관심은 새해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새해 인사차 수백 명의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충청권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 10명 중 7명은 20대 대선과 관련하여 최근 들어 지지율이 하락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충청인들의 뇌리에는 윤석열 후보가 충청권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는 사실에는 異論(이론)이 없는 것 같다.

충청권의 ‘충청대망론’ 실현을 위한 노력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제1공화국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하여 1955년 결성된 민주당에서 海公(해공) 신익희 선생의 뒤를 이은 구파의 리더는 충남 천안 출신의 維石(유석) 조병옥 박사였다. 조병옥 박사는 미군정 시절 경무부장을 거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어 대구방어에 성공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1959년 열린 민주당 정·부통령 선거 지명대회에서 신파의 리더 雲石(운석) 장면을 꺾고 제4대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조병옥 박사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매우 큰 상황에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나, 신병 치료차 渡美(도미)하여 치료를 하던 중 낯선 이국 땅에서 결국 유명을 달리하며 충청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병옥 박사의 뒤를 이어서는 충남 아산 출신의 海葦(해위) 윤보선 대통령이 민주당의 중심인물이 부상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정부에서 제2대 서울시장 등에 임명되는 등 친정부 인사였으나, 1952년 부산 정치파동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결별하면서 야당 인사로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조병옥 박사 死後(사후) 민주당 구파의 리더 자리를 놓고, 경기도 김포 출신의 常山(상산) 김도연 박사와 경쟁했으며, 4.19 혁명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의 의원내각제 하에서 구파와 신파가 행정수반이자 실질적 국정 운영의 권한을 지닌 국무총리 자리를 놓고 볼썽사나운 경쟁을 벌이고, 구파에서도 김도연 박사가 국무총리에 관심을 표하자 스스로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선택하게 된다. 윤보선 대통령은 5.16 이후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범야권 후보로 추대되어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 맞서 15만여 표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고,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제1야당 신민당의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공화당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116만여 표 차이로 패배하면서 역시 ‘충청대망론’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윤보선 대통령 이후 충남 금산 출신의 玉溪(옥계) 유진산 선생은 제1야당 신민당 총재로서 대권을 노렸으나, 1970년 신민당 총재 당시 巨山(거산) 김영삼·後廣(후광) 김대중·素石(소속) 이철승 등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에 밀리면서 역시 대권과 멀어지게 된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에서는 충남 부여 출신의 ‘영원한 2인자’ 雲庭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대선 문턱에 다가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결국 2인자 자리에 만족하고 10.26을 맞이하게 된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과 ‘DJP 연합‘을 통한 내각제 개헌 합의를 통해 DJP 연합정권을 출범시키지만, 내각제 개헌이 결국 물거품 되면서 행정수반이자 실질적 국정 운영의 권한을 지닌 국무총리의 꿈조차 결국 이루지 못하고 만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 선조의 선영이 충남 예산이라는 이유로 충청 연고를 주창한 俓史(경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면서 대권에 가장 근접했으나,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각각 1.6%p와 2.3%p 차이로 惜敗(석패)하면서 다 잡았던 대권을 눈앞에서 놓치게 된다.

이처럼 1960년부터 維石(유석) 조병옥-海葦(해위) 윤보선-玉溪(옥계) 유진산-雲庭 김종필-俓史(경사) 이회창 등 ‘충청대망론’을 향한 도전은 계속돼 왔다. 하지만, 2002년 이회창 전 총재 이후 충청권은 세 차례의 대선에서 영호남의 변방에 머물렀으며, 그런 연유로 인해 특정 정치 이념을 갖지 않은 충청인들 중심으로 윤석열 후보에 대한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대 대선을 65일 남겨 놓은 현재 윤석열 후보의 ‘충청대망론‘이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孟子(맹자)의 王道論(왕도론)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나오는 ‘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천시불여지리지리불여인화)’라는 말처럼 윤석열 후보에게 天時(천시)와 地利(지리)는 다가온 것 같은데, 작금의 상황은 아직 人和(인화)까지 다가온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윤석열 후보가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멋진 결단을 내리고, 합리적 선택을 내리면서 스스로 발광체가 되어 人和(인화)를 이루어낼 때만이 충청인들이 꿈꾸는 ‘충청대망론’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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