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재판참고인 자격에서 피의자로 45일 만인 1993년 9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형사지법 조○○호. 용기 없는 판사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으며 증인도 없는 가운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 핵심 주범인 박동준 장군은 미국으로, 천성관의 경기고 선배인 한진구 장군은 국내에서 도피한 가운데 판사는 서둘러 내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방청석의 야유와 웅성거림 속에 나를 석방했다. 45일 만에 급하게 재판하고 석방한 것은 의문이다. 도피한 피의자 2명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1993년 7월 31일,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각 언론사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하는 기자들 앞에 서면서 인권 찾는 김영삼이 눈에 어른거렸다.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나 그 믿음은 곧 무너졌다. 공안1부 903호실의 담당 검사 천성관을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21사단의 사단장일 때 중위로 군법무관을 했던 부하였다. 사건을 조작, 언론 플레이를 통해 국민에게 알린 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이것이 민주주의인가군인이 목숨 바쳐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특정인의 권력 유지 차원의 충성이 아니다. 수사기관에 불려가 본 사람은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를 절감한다. 결과가 어떻든 ‘일단 구속하고 보자’는 검찰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생명보다 소중한 명예의 훼손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구속은 수사편의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잡아넣고 심리적 압박을 가해 쉽게 자백을 받아 내려는 의도다. 수사편의주의는 우리 헌법에 반한 행위다. 우리 헌법에서는 ‘유죄 확정까지 피의자는 무죄로
YS는 안 됩니다6공화국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였다. 이전인 1990년 1월 22일,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JP(김종필 총재), YS(김영삼 총재), TJ(박태준 최고위원)가 3당 통합을 한 후부터 이어진 고민이었다. JP는 젖혀 두고 YS냐, TJ냐를 따졌다. 한번은 내게 의중을 물어오기에 “YS는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YS의 측근인 최형우 정무장관이 나를 찾아와 “이 형, 도와주세요. 대통령께 말씀 좀 잘해 주세요. 우리 집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사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활성화체육청소년부 장관이 되어 제일 먼저 내건 목표는 전국 각지의 생활체육 활성화와 청소년 육성 시설의 확대가 절심함을 느꼈다. 게이트볼 등 체육시설 10개가 노인병원 20개의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현재는 생활체육협의회를 대한체육회가 합병하여 관리하고 있다. 당시는 국위를 선양하는 올림픽을 위한 대한체육회를 필두로 한 엘리트 체육과 국민생활체육협의회를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각 지방 단위로 청소년 훈련 시설과 일반 국민의 생활체육 활성화에 대한 수요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세종시(시장 이춘희)가 쾌적‧안전한 환경 및 자연이 숨쉬는 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한다.이두희 환경녹지국장은 13일 오전 10시 시청 정음실에서 개최된 제273회 정례브리핑에서 ‘2020년 환경녹지국 주요 업무계획’에 대해 발표했다.이 국장은 “우리 시는 지난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환경관리를 통해 시민들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올해는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초미세먼지 저감, 안정적인 생활폐기물 처리, 친환경 공원조성 등을 추진하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세종시가 주요 내용을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진삼 -체육청소년부 장관“가족과 함께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청와대 체육관으로 내일(1991년 12월 11일) 오후 3시까지 들어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이현우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가 청와대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대통령과 영부인은 테니스 선수들과 몸을 풀고 있었다. 운동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는 군대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노 대통령이었다.“군 생활이 좋아. 강등해서 사단장 하라면 다시 하겠다. 군대가 제일 좋아
회장님, 고맙지만1991년 10월 오전 9시 태릉에서 골프 약속이 있었으나 오전 강수량이 20mm를 넘었고 오후에는 폭우 경보 발령까지 내려서 아침 7시경 취소하였다. 때마침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내흔 친구가 바람 쐬러 가자고 하여 어디론가 같이 갔는데 종로구 청운동의 현대그룹 왕회장 댁이었다. 정 회장은 백색 마스크를 벗으면서 “젊을 때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일을 하다 보니 감기 면역성이 떨어져 조심하고 있다.”면서 독감이나 유행성 감기가 아니기 때문에 전염 걱정은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1개월 전 한강 수해 당시 행주대교 건
교육지상(敎育至上), 중앙 심사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이진삼 -1990년 9월, 육군대학 초도순시차 방문했다. 순시를 마치고, 강당 연단 위에 내가 볼 수 있도록 1972년 1월 23일에 졸업한 나의 육군대학 성적이 놓여 있었다.“육군대학총장이 나를 기분 좋게 하려고 졸업성적을 갖다 놓았는데 내가 왜 성적이 좋았는지 교관들에게 물어보겠다. 답변을 듣고 싶다.”몇몇 교관들이 일반론적인 답변만을 하니 대학총장이 “답변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상금 걸어 놓았는데! 내가 머리가 좋았기 때문도 아니고 교관들에게
가칠봉 수영장제4땅굴을 발견한 최전방 고지인 가칠봉(1,242m) 남방한계선 철책선상 우리 측 GP에 장병용 수영장을 만들었다. 1989년 1군사령관 재임 시 시공하여 1991년 참모총장 시 개장했다.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시추공 작업을 하던 중 수맥을 발견했다. 하루 150톤의 수량을 생활용수와 급수시설로 활용하고 수영장을 만들었다. 이곳은 전 휴전선에서 적 GP와 우리 GP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2013년 1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가칠봉 고지와 2014년 6월 초 김정은이 다녀간 속칭 김일성 고지가 마주보이는
UH-60은 세계 최우수 헬리콥터1991년 7월, 대한민국 육군의 미래 주종 헬리콥터, 세계 최신예기로 미국에서 UH-60을 도입하여 육군참모총장이 최초로 운항하게 되어 있었다. 서울∼계룡대 간에 25분이 소요되며 쌍발 엔진으로 바다에 불시착해도 장시간 생존 가능한 고가의 장비다. 도입 전 미국회사 시험 비행사 8명이 도착해 3개월간 한국조종사와 합동 운항토록 되어 있었다.1991년 8월, 서울 출장차 수행원들과 육본 헬기장에서 이륙하려는 순간, 미 조종사가 엔진 2개 중 1개의 이상으로 운행불가라는 보고를 했다. 즉시 리스카시 연
군인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국가가 위태로울 때 생명을 요구받는 순간이다.- 이진삼 - 제28대 육군참모총장장군 11년 만에 1990년 6월, 제28대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한 지 36년 만이었다. 계룡대 연병장을 사열하는 내 머릿속엔 지난 수십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임무 위주의 육군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내외의 어떠한 도전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가꿔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육군 제32사단 97연대 3대대가 예비군 훈련과 자원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청양군 남양·화성 예비군중대를 통합했다고 6일 밝혔다.통합 창설식은 지난 3일 남양면 다목적회관에서 열렸으며, 군부대와 유관기관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남양·화성면대는 사업비 2000만 원을 들여 남양면 예비군중대를 개축했으며, 110여 명의 예비군 자원을 기반으로 서해를 통한 적 침투에 대비한 지역방위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사령관님, 땅굴 각도가 잘못됐습니다.”현장 작업에 참여했던 업체에서 적외선 빔을 잘못 건드려 각도가 위를 향한 바람에 아래로 뚫어야 하는 땅굴이 위로 올라갔다고 했다. 다시 밑으로 꺾기 위해서는 다른 장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조치할 수 있나, 박 장군!”나는 박 장군의 눈빛을 보며 물었다.“네, 할 수 있습니다, 사령관님!”할 수 있다는데 다른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염려 마라. 불가능은 없다. 최선의 방책을 강구하자.”나는 무엇이든 일단 맡기면 그것으로 끝이다.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불가능은 없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성공의 근본이다.-이진삼배경“하나의 갱도(땅굴)는 열 개의 원자탄보다 낫다. 1975년 10월 10일까지 관통, 노동당 창설 30주년까지 전방 지역에 요새화된 적의 진지를 무력화시켜라.”1971년 9월 25일, 북한의 김일성은 땅굴 굴착 전투 명령을 하달했다. 이는 곧 요새화된 남한의 훼바, 알파, 브라보, 찰리 등을 자신들이 판 땅굴을 통해 1시간 내에 8km 이상을 강행 돌파함으로써 우리의 주 병력이 진지 FEBA(전투지역의 선단) 점령 전에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1
진위(眞僞) 구별법1989년 4월 6일, 참모차장의 자리에 보직된 지 9개월 만에 노태우 대통령은 나를 대장으로 진급시켰다. 그러면서 서부전선인 용인의 3군사령부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서울 인근에 있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는 산악3군단과 21사단이 휘하에 있다.“정호근 장군은 임기가 다 됐으니까 1군으로 제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3군사령부는 간 지 4개월밖에 안 됐으니까 보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때 만약 내가 노 대통령의 뜻대로 3군사령관으로 부임해 갔다면, 앞선 사령관은 임기 전에 옷을 벗어
보령시통합방위협의회는 지난 9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의장인 김동일 보령시장 등 20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4분기 통합방위회의 및 연말 군경 위문을 실시했다.이번 협의회는 연말을 맞아 군·경·소방서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한편 올 한해 민·관·군경 통합방위 및 통합방위협의회의 운영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이날 협의회에서는 ▲ 1분기 회의를 예비군 훈련장에서 개최해 전투장비 관람 및 장병 격려 등 현장 중심 활동 전개 ▲ 통합방위지원본부(종합상황실) 내 CCTV 통합관제센터 영상공유 시스템 구축 활용으로 군· 경 작전수행
보안사령관 안 하겠습니다1988년 1월과 2월,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는 연희동 자택으로 나를 불러, 보안사령관직을 맡을 것을 두 번에 걸쳐 권유했다.“저는 보안사령관 안 하겠습니다. 제가 보안부대 8년, 정보사령관 2년, 10년간이나 정보계통에 있었습니다. 저는 야전(전투) 지휘관 하겠습니다.”“박준병 장군 보안사령관 했는데 후에 어떻게 되었지?”“1979년 10·26 때 20사단장으로 서울 태릉으로 출동했다가 보안사령관 끝내고 예편, 민정당으로 충북 보은·영동·옥천군 국회의원을 하고 있습니다.”“안필준 장군은?”“6군단장 끝내고
충남대학교는 화학과 이재범 교수 연구팀(제1저자: 권준영 박사과정, 김정효 박사)이 부산대학교 및 국립암센터와 수행한 공동연구에서 철 기반 생체 친화적 양자점(셀렌화철)을 합성해 살아있는 쥐 모델 생체내의 암세포를 형광 표지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구실지원사업(BRL),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질환극복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Impact Factor: 12.804
산악 3군단장★★★1987년 1월 13일, 중장으로 진급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나를 서울 거여동에 있는 공수특전사령관으로 내정했다. 나는 참모총장을 방문하여 말했다.“저는 9공수참모장과 9공수여단장을 했습니다. 전방 군단장으로 보내주십시오.”“어제 대통령께 결재 올리면서 결정했는데 어떡하나?”“총장님, 고생은 되겠지만 저는 많은 병과를 지휘 통솔하는 정규 군단장을 하겠습니다. 보병, 포병, 공병, 기갑, 통신 등 정규 작전 부대를 지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21사단과 12사단 지역 땅굴을 발견하겠습니다.”“정 그렇다면, 전화로 보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