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목숨건 침투 - 16 참모총장 Ⅰ
[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목숨건 침투 - 16 참모총장 Ⅰ
  • 뉴스티앤티
  • 승인 2020.01.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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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 뉴스티앤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 뉴스티앤티

군인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국가가 위태로울 때 생명을 요구받는 순간이다.

- 이진삼 -

 

제28대 육군참모총장

장군 11년 만에 1990년 6월, 제28대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한 지 36년 만이었다. 계룡대 연병장을 사열하는 내 머릿속엔 지난 수십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임무 위주의 육군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내외의 어떠한 도전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가꿔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군의 존재 목적이기에 어떠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육군은 국가보위의 초석’으로 사명의식을 갖고 신명을 바쳐 국가의 번영과 통일 위업 달성을 뒷받침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관심과 분석 그리고 의미

육군참모총장으로 충남 출신의 내가 기용된 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충남에서 육군참모총장이 나온 것은 58년 전 1959년 41세인 송요찬 장군이 중장으로 총장을 하였고, 대장 계급으로의 육군참모총장은 충남에서 내가 최초였다. 송 장군은 63세를 일기로 운명하시어 충남 청양군 화성에 고이 잠들어 계시며 육군과 청양군에서 성역화 하였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이른바 정치군인들이 우대받는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가 군에 있었던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임을 지적했다. 그런 이유로 많은 군인들이 전투력을 배양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특정한 부대의 지휘관 경력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군인 특히 육군의 핵심 간부는 야전성 있는 지휘관이어야 한다. 군인들이 야전지휘관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야전 지휘능력이 탁월한 군인이 발탁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군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군내의 일부 정치군인, 선두 주자들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건의, 공정한 인사를 위하여 진급제도를 바꿨다. 모든 계급의 진급심사는 1심 규정을 3심제로 변경하고 진급서열 추천제도, 특정인의 인맥 등을 심도 있게 분석, 청탁자를 탈락시켰다. 기득권을 배제하고 해당자는 누구든지 객관성 있게 능력을 평가받도록 하였다. 대통령도 내게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전 국토의 요새화(要塞化)

전방의 GP(경계초소), GOP(일반전초), FEBA(주진지), 보조진지, 예비진지, 후방 경계진지 등 전국적으로 적이 공격 내지 침투를 못 하도록 전 국토를 요새화하였다. 진지를 구축하기 전, 전술 지식이 해박한 장교들로 하여금 사전 작전 계획을 검토하고 작업을 위한 공구와 장비를 보강하고 자재와 예산을 투입해 3개월간 전 국토에 물샐 틈 없는 강력한 진지를 강화하였다. 이를 통하여 전투 시 진지 구축 훈련도 병행 실시하였으며, 실제로 포를 포함한 모든 화력으로부터 우리의 생존 보장을 시험한 결과, 30퍼센트의 생존율이 97퍼센트의 생존율로 나타났다. 공격이나 방어 시에 땅을 파는 자 죽지 않고, 평상시 흘린 땀은 전시에 피를 대신한다.

 

전 장병의 전투 요원화

보병, 포병, 기갑, 항공, 공병, 통신 등 모든 전투병과는 물론 각종 행정부대도 전투력 증강을 위하여 기술, 행정, 보급, 수송, 경리, 운전병, 당번까지 각 단위 부대별로 사격 및 유격 훈련을 포함 기본 훈련을 6개월 내에 완성하고 보고하도록 하였다. 방첩부대 특공대장, 대공과장, 베트남에서 기동대장으로 있으면서 운전병, 당번을 평시에 훈련시켜 공비를 사살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진지 공사와 전투 훈련은 전 장병들의 정신무장과 더불어 전투력을 향상시켰다.

 

어, 어, 어 하더라

1990년 6월 17일자 <주간조선> 표지에 참모총장이 된 내 사진이 실렸다. 엄마 등에 업혀 책방 앞을 지나던 어린 손자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어, 어, 어, 하더라”는 며느리의 말을 듣는 순간, 어린 손자를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철부지 어린 손자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로 인정받는 일이 육군참모총장이 된 것보다 더 행복했던 일이었다면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애국’의 마음과 국민의 재산과 생명 보호를 위해 존재해온 ‘애족’으로 사는 동안 내게 있어 우선은 언제나 조국이었다. 국가가 위태로울 때 자기의 생명을 요구받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여기며 살아왔기에 국가는 내게 전부였다.

지리산을 열 번쯤 다녀온 사람은 ‘지리산 박사’가 되지만, 일백 번쯤 다녀온 사람은 ‘지리산은 가고 또 가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산’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군인의 길은 가면 갈수록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길이다. 미쳐야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수십 년 그렇게 미쳐서 사는 동안 주어진 자리가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손자를 비롯한 가족은 육군참모총장이 된 나를 보며 여전히 미쳐 살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미친 삶’이 참군인의 길을 갈 거란 믿음을 보내온 것이다.

“어, 어, 어…….”

애국 애족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할아버지.

애국 애족하는 내 남편.

애국 애족하는 용감한 우리 아빠가 되고 싶다.

 

복음화도 통합을 통하여

대전광역시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계룡산 기슭에 자리한 계룡대는 총 면적이 900만 평이다. 군 전략상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1989년 7월 육군본부와 공군본부가 자리한 후, 1993년 6월에 해군본부가 이전되면서 3군의 새로운 통합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참모총장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해군본부가 이전 전이었지만, 계룡대 내에 2000년대 군 종교 활동의 구심체 역할을 감당할 계룡교회 건립을 추진하면서는 이전해 올 해군도 감안해야 했다.

1991년 4월 26일, 1천만 기독교인들의 초교파 연합단체인 군 복음화 후원회에서 제공한 45억 원을 투입, 5,450평의 부지 위에 연건평 2,284평 규모로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양 최대 교회 건립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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