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교육지상(敎育至上), 중앙 심사

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 이진삼 -

1990년 9월, 육군대학 초도순시차 방문했다. 순시를 마치고, 강당 연단 위에 내가 볼 수 있도록 1972년 1월 23일에 졸업한 나의 육군대학 성적이 놓여 있었다.

“육군대학총장이 나를 기분 좋게 하려고 졸업성적을 갖다 놓았는데 내가 왜 성적이 좋았는지 교관들에게 물어보겠다. 답변을 듣고 싶다.”

몇몇 교관들이 일반론적인 답변만을 하니 대학총장이 “답변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상금 걸어 놓았는데! 내가 머리가 좋았기 때문도 아니고 교관들에게 잘 보여서도 아니다. 나는 사단 보안부대장 할 당시 고등군사반, 보안사 인사과장 할 시에 육군대학 교재를 사전에 선배들로부터 받아 예습을 했다. 그래서 성적이 좋았던 것이다. 앞으로 교관들은 교육하기가 수월하겠군.”

모두가 박장대소하였다.

칠판에 ‘교육지상’을 적고 ‘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국가의 흥망은 군 간부에 좌우된다.’를 시작으로 교육 지상주의를 강조하며 교육 훈련을 강조했다. 군에서는 우수한 장교들이 육군사관학교, 3사관학교, ROTC, 각종 특과학교를 포함 각 병과학교 전 과정의 훈육관과 교관 그리고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훈시하였다.

교관은 첫째로 군의 지휘관과 참모를 역임한 자, 둘째로 군사교육 학교 성적과 고과평점, 인격, 야전성, 솔선수범, 가치관과 철학, 사생관, 끈기, 인내심, 도전정신, 지휘통솔, 사생활, 품격 등을 종합평가한다. 셋째로 직업의 3대 요소인 적재적소(適材適所), 직장취미(職場趣味), 능력발휘(能力發揮)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점을 파악 제도화해야 했다. 우수 집단인 학교에서는 진급 추천 서열 받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대령 진급을 위한 중령 중 해당자가 20명이라면 1~2명이 진급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2/20 이상 지휘관 서열을 선배들이 우선으로 받기 때문에 후배들은 동기생 중 우수한 인재가 탈락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우수 인재가 교육기관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급 해당이 되면 오히려 학교 교관이 되는 것을 피해 떠나려고 하는 추세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보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가겠다. 선물이 무엇인지 아는 장교는 대답하라. 정답을 말하는 장교는 2주간 가족 동반 외국 군사학교 순시 겸 여행을 보내 주겠다.”

3명의 교관이 답을 했으나 정답은 아니었다. 정확한 답변자가 없었다.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육군 전 교육기관에 지시한다. 앞으로 모든 계급 진급은 서열 없이 육본 중앙 기록카드 심사로 결정한다. 우수 집단인 교관들이 다수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내 말이 떨어지자 모든 장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과 함께 “총장님 파이팅!”을 연거푸 외쳤다. 상상 그 이상의 반응이었다.

“앞으로 모든 교육기관 간부는, 각 학교에서 원하는 장교를 직접 육군본부에 와서 선발하도록 최우선권을 주겠다.”

교육지상이다. 나의 지시가 떨어지자 과거와는 달리, 교관과 훈육관을 희망하는 우수한 장교들이 많아졌다. 다시 말한다. 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 지휘관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국가의 존망을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한다.

 

전방으로, 학교로

“왜 육군본부에 보좌관들이 이렇게 많아?”

참모총장이 되면서 그간 느꼈던 보수의 구태를 벗기기 시작했다. 육군본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많은 장군들 방에 근무하는 보좌관, 소령과 중령들이었다. 중요한 전방대대 작전장교가 소령이 아닌 대위가 하는 등 전방에서는 영관 장교들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제부터 일선 전방 야전 근무 위주로 진급 우선권을 주겠다. 육군본부, 군사령부, 군단부터 인력 감사를 지시하였다. 국방부도 물론 해군, 공군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사군기가 바로 이것이다. 정신교육이 따로 없다. 그러자 후방 근무를 선호했던 소령과 중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방으로 전출을 희망했다. 전방 사단 근무가 인기직이 되었다. 군의 혁신이 시작되었다. 말 한마디에 부족한 전방 인력이 해결되었다.

1971년 보안사령부 인사과장 시절, 인사 심사위원회에서 47명의 영관장교를 육군본부로 전출시킨 적이 있다. 보안사령부는 계급보다 하위직책 보직자가 많아지면서 진급 적체 현상으로 사기가 저하된 상태였다. 당시 사령관이었던 김재규 장군은 결재를 하면서 “왜 하필 내가 있을 때 정리하느냐?”고 물었다. “사령관님, 저는 금년(1971년) 10월 1일 중령 진급 예정자로 8월에 육군대학을 거쳐 전방 대대장을 희망하고 있습니다.”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안사령부 일개 소령이 풍파를 일으켰다. 바다도 심한 파도가 물을 정화하고 고기도 잘 크고 번식시킨다.

1990년 참모총장 취임 후, 육군본부를 포함 예하 부대 인력 감사를 보고하도록 하면서 특과부대는 감편하고 전투부대 보강으로 전투력 증강의 계기를 마련했다. 사람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1959년 소위로 임관할 때 많은 선배들이 다른 병과 가지 말고 ‘보병으로 가라’고 했던 조언을 받아들여 보병의 길을 선택했기에 참모총장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간의 폐습과 타성을 말 한마디에 시정할 수 있는 참모총장이 된 것이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계급과 직책을 떠나 보람과 긍지를 가졌다.

 

헛되고 헛되도다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1장 2절에서 말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우리 모두는 발버둥 치며 산다. 무엇을 위한 발버둥인가는 모두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살기 위해,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축재(蓄財)를 위해 발버둥 친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치는 그 부귀영화, 쾌락이 허황되고 헛됨이다. 눈에 보이는 피상을 넘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관과 철학을 달성할 수 있었느냐로 인생을 평가하고 싶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군인은 ‘사생관’, 공직자는 ‘멸사봉공’의 자세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남아 있는 삶이 지금껏 내가 살아온 기간보다 짧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여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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