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

이진삼 장군 / 뉴스티앤티
이진삼 장군 / 뉴스티앤티

가칠봉 수영장

제4땅굴을 발견한 최전방 고지인 가칠봉(1,242m) 남방한계선 철책선상 우리 측 GP에 장병용 수영장을 만들었다. 1989년 1군사령관 재임 시 시공하여 1991년 참모총장 시 개장했다.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시추공 작업을 하던 중 수맥을 발견했다. 하루 150톤의 수량을 생활용수와 급수시설로 활용하고 수영장을 만들었다. 이곳은 전 휴전선에서 적 GP와 우리 GP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2013년 1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가칠봉 고지와 2014년 6월 초 김정은이 다녀간 속칭 김일성 고지가 마주보이는 지점이다. 북한군 GP까지의 거리가 불과 350m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병사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북한 병사들이 부러워하도록 했다. 추운 겨울인 12월, 1월, 2월은 제외하고 봄과 가을에 보일러를 가동하여 야간에도 수영을 하고 세탁을 하도록 했다.

1991년 7월 3일 오후 3시, 수영장 개장에 맞춰 한미연합사령관 리스카시 대장이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개장 시간 30분이 지나도 리스카시 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솔산(1,148m) 돌산령 헬리콥터장으로부터 대우산(1,179m)을 지나 가칠봉(1,242m)까지 북방으로 10km의 15분 거리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개장 행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군악대 연주를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30분 후, 장병들의 수중 농구 시합이 시작되자 헌병의 앞뒤 경호하에 불을 번쩍거리며 리스카시 대장 일행이 나타났다. 나는 장병들에게 시간을 지키지 못한 리스카시를 가리키며 “야, 리스카시 물에 집어넣어.”라고 명령했다. 입고 있던 그의 전투복은 물론 끼고 있던 안경, 수첩 등이 모두 젖었다. 그런 그를 말 태우고 ‘백두산까지 앞으로 적군을 무찌르고’ 군가를 부르며 수영장을 한 바퀴 돌게 했다. 이를 지켜보는 적들은 그 또한 계획된 행사로 착각했을 것이다. 천막 칵테일장에서 리스카시에게 세탁비를 주었으나 극구 사양하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가칠봉수영장에서 700m 떨어진 북측 산등성이에는 북한의 선전구호인 ‘무료교육, 북남불가침 선언 채택’ 구호가 보였다.

 

인사참모부장 보고

1990년 12월 중순 인사참모부장이 보고차 결재판을 들고 왔다.

“총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연말연시 사고예방 차원에서 전후방 각 군단, 사단 지역별로 77개 감사반(장군 1명과 대령 1명)을 편성하여 전국 군기순찰을 내보내겠습니다.”

“광역 순찰은 수박 겉핥기다. 작년 순찰 결과를 가져와라.”

지시에 당황하는 인사 참모부장에게 말했다.

“사고는 화재, 교통, 총기, 구타, 자해, 폭발물, 적설로 인한 조난 등 안전사고다. 특히 고지, 격오지 부대 통신망 유지, 도로 제설 작업으로 교통망 유지 등 예상치 않은 천재지변에 대한 대책과 산악부대 GOP 장병 목욕 실태도 보고하라. 내일 전체회의에서 산악지역에서 내가 겪은 경험들을 지시하겠다. 군기순찰 계획을 취소하고 특히 전방 위주 사고 예방 대책을 강조하라.”

“쌍팔년도(단기 4288년, 서기 1955년)의 구태의연한 짓을 하지 마라. 육군본부에서 군기순찰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각급 부대에서는 적발되는 것을 피하고자 면회 온 가족들을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여관에서 밥을 시켜 먹게 하는 등 지난날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 이러한 안일한 생각에서 탈피하는 지휘관들이 되어주기 바란다. 헌병은 면회 온 가족과 애인에게 친절, 봉사, 안내 등 보호를 철저히 하라. 그리고 각 지역의 군 지휘관은 지역관할관이다. 위수사령관이며 군법회의설치 장관이다. 육군본부에서 오든 말든 각 지휘관 책임하에 휴일 체제로 돌입하고 지휘관들은 정위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장병들은 영내에서 자유롭게 운동과 휴식을 취하라. 대전 계룡대에서 간성, 고성까지 가는 데 7시간이 걸린다. 운전수 등 많은 인력, 수십 드럼의 휘발유, 경비, 시간, 장비물자 등을 낭비하지 마라. 육군본부 장군, 대령들은 모두 영내에서 운동을 해라. 골프, 테니스, 축구, 농구, 배구 등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각급 부대에서 해야 할 제안 사항이 있다.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하사관들은 1월 1일 전 장병과 떡국을 같이 먹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10초간 목례하고 군가 부르며 상호 경례, 구호 제창 해산하고 간부들은 조별로 격오지 부대를 방문하라. 면회하는 장병 가족의 안전문제 특히 지역 숙박업소의 연탄가스 중독 위험 등 각종 안전 위해 요소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지역 민간 식당의 위생 문제도 점검하는 등 각종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기관과 긴밀히 협조토록 하라. 또한 대대장급 이하 지휘관은 병사들과 운동을 하거나 장기자랑 등의 오락회를 열도록 하라. 또한 부대 주둔지에 있는 민간인들이 조상께 성묘할 수 있도록 산소도 정리해주고 도로 제설 작업 등 출입 편의를 돌보고 친절히 안내하라.”

이러한 내용을 육군본부 전체 주간회의에서 지시했는바 각급 예하 지휘관들이 “참모총장 최고다.”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해 1월초 시무식 후 전국적으로 거의 사고가 없었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받았다.

 

이진삼심제(李鎭三審制)

헬렌 켈러 여사는 사람들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뭐야?”라고 물어 오면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진급심사도 마찬가지다. 비전 없는 심사는 군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심사위원 선발에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나는 참모차장 재임 중 참모총장의 명령으로 1989년 1월 1일에 진급하는 장군 진급 심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진급심사에서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모든 장병들은 근무 의욕을 상실한다. 평가기준으로 상급지휘관의 진급서열, 경력, 부대시험 성적, 훈장(표창), 근무고과(평점), 성적(초등군사반·고등군사반·육군대학), 지휘통솔, 인내심, 도전정신, 성격, 기질, 행동, 사생활, 건강, 체력, 여론 등을 고려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하는 심사과정이다. 장군 선발은 일단 유사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평균 45~50명 내외 진급에 600~700여 명이 해당자로 15명 중 1명이 진급한다. 참모총장으로 부임한 1990년 이후 장군 진급심사는 중장(☆☆☆) 1명이 심사위원장을 맡고 소장(☆☆) 6명이 심사위원을 맡았던 1심제에서 3배수에 가까운 중장(☆☆☆) 3명, 소장(☆☆) 15명(중장 1+소장 5)×3의 총 18명이 3개 조로 나뉘어 1차 심사 후 위원장 3명이 참모총장에게 최종 보고하는 3심제도로 바꿨다. 과거에는 심사위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좌우되던 진급관행을 이진삼(삼)심제(李鎭三(三)審制)로 바꿨던 것이다. 여기에 진급 부조리와 청탁 등 정실 심사는 불가능하다. 매년 12월 중순 최종적으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1월1일 장군으로 진급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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