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되짚어보자.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21년 3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직을 던져 버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끊없이 정치권에 일종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관계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아마도 이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대선 로드맵’이 그려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시 윤 당선인이 처음 만난 ‘국힘’ 관계자는 정진석 의원이었다. 정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는 윤 당선인 부친의 고향이자 집안인 파평 윤씨 집성촌이 있는 지역이기에 각별한 인연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국힘' 입당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그의 대선 로드맵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당시 '국힘' 안팎에선 이준석 대표의 막강해진 구심력으로 윤 당선인의 대선가도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하지만 단지 ‘밀당’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 뒤인 지난해 6월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때부터 그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 가치관 등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봇물을 이뤘다. 그러나 이것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이어 당내 경선을 가볍게 돌파하고 48.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대권을 거머쥔 순식간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특수통 검사 출신인 윤 당선인에게 ‘공정’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상당수 국민들에게 ‘상징적인 자본’이었다.

요즘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파릇한 신호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는 가운데 덧없는 ‘정권 이양’을 둘러싼 ‘신경전’으로 국민 피로감이 극심하다.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 대통령 당선인과의 회동에 대해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윤 당선인이 전날 문 대통령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지명한 것을 두고 “차기 정부와 다년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조치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선 데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당선인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고, 당선인 측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20일 윤 당선인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전과 관련한 예산집행이 어렵다며 제동을 걸어 현재까지 갈등은 다른 문제에 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윤 당선인은 한발 더 나아가 취임 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 머무를 경우 이동용 지휘소인 ‘국가지도통신차량’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본래 위기 상황에선 청와대 국가위기 관리센터(지하벙커)를 이용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윤 당선인은 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윤 당선인 측은 법무부 업무보고를 돌연 취소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윤 당선인은 검찰의 직접수사 확대와 예산 편성권 부여, 법무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했으나 박범계 법무장관이 “검찰의 문민 통제가 필요하다”며 윤 당선인 공약에 반대한 게 인수위 파행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은 지금처럼 신·구 권력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맞서는 것에 몹시 불안하다. 차분하게 냉정을 되찾아 더 이상의 선을 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국민이 보기에 이 ‘듣보잡’의 권력충돌에서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CBS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 인수위 활동 평가에 대해 부정 48.4%, 긍정 45.9%로 나타났고, 윤 당선인 취임 후 국정운영 전망에는 부정 55.8% 긍정 42.1%로 조사됐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찬반을 묻는 질문에는 반대가 53.6%(적극 반대 44.8% + 반대하는 편 8.8%)로 찬성 42.9%(적극 찬성 27.2% + 찬성하는 편 15.7%) 목소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윤 당선인의 득표율을 뛰어 넘는 부정적인 수치다.
여론조사 업체인 코리아정보리서치(중부) 관계자는 “국민 여론을 놓고 볼 때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슈를 지방선거로까지 끌고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1순위 국정 가치로 '정의'를 꼽은 만큼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차분히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 자격으로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그 유명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공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좀 더 따뜻한 가슴으로 ‘국민’이라는 거대 조직과 마주했으면 참 좋겠다.
새봄, 새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신·구 권력이 부디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에게 충성을 다 해 주었으면 한다. 취임을 앞 둔 윤 당선자에게 기대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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