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 아닌 ‘분별의 계절’이다.

대체로 우린 일상에 지쳐 살지만 이맘때 쯤 되면 어쩌면 만물이 어김없이 저마다 분수에 맞게 자신을 척척 피워 올리는지, 그 경외감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함을 느낀다.

좀 더 나의 걸어온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바람마저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우리 부족한 마음을 보듬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만나는 푸르름은 신이 내려준 축복이다.

아마도 우리가 찬란하다고 얘기하는 ‘생동’은 곳곳으로 넘쳐흘러 마음을 부풀게 한다. 또한 그 생동은 한없는 푸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그저 향기로움에 젖게 만든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땅을 딛고 올라 온 초록의 향연은 우리의 근심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저절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선대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줬던 청보리밭도 그중의 하나다.

우리는 사실 그 깔깔한 연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애달픈 그리움이 마침내 푸른 강물이 되어 버린 그런 사연, 그런 연유를 얼마 동안이나 그리워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상념에 젖어 본다.

 

한기원 편집위원
한기원 편집위원

오늘은 4.19.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사건은 한 달 전 실시된 3·15 부정 선거였다. 제4대 정·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자유당 대통령 후보로는 4선을 노리는 이승만이, 부통령 후보로는 이기붕이 출마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외 상황은 이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12년간 이어진 이승만의 장기 독재 체제는 거듭된 실정(失政)으로 민심을 이반시켰고, 자립 기반이 취약한 경제는 만성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산업 침체와 실업률 상승을 불러왔다.

이에 3·15 선거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개악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무리하게 바꾸는가 하면, 비판적인 논조의 ‘경향신문’을 폐간하는 등 독재 정권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절정은 3·15 부정선거였다.

가장 자랑스럽고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4.19 혁명의 봄이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의 일이다.

파릇한 ‘새봄’에 뜨거운 가슴으로 반독재, 반부정을 향한 대중의 궐기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 필자는 스스로에게 작은 ‘궐기’를 꾀해 볼까 한다.

바로 ‘절연(絶煙)’이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누런 원고지와 더불어 그대와 처음 만났던 기억이 오롯하다.

그대, 이제 어엿한 중년이 되었고, 그 무엇이든 오래 만지면 영혼이 생긴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이 산하에, 그대 그동안 어찌 보면 첫사랑 같은 고요한 이야기를 너무나 길게 들려주었다.

잘 가거라. 등신불처럼 말 없는 그대여. 그때 만났고 나 이제 가련다.

이젠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는 우호적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작은 궐기가 선열들의 무덤가 골골마다 작은 위안으로 상재(上梓)되길 바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 삶을 통째로 지탱해 준 것도 아니었기에 그리워할 것도 아니며 반드시 잊어야 할 일이다.

뜻깊은 4.19혁명 기념일도 추념하고, 봄의 찬미에 절연까지 이뤘으니 이런 분별있고 경건한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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