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

과거 한반도에는 전국 어디서든지 호랑이가 출몰할 만큼 그 수가 많았다. 오죽하면 외진 산골에서 호랑이로 인해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호환(虎患)’이라 불렀을까 싶다.

호랑이는 착한 사람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이가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를 사납게 노려보며 포효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곳곳에 남아 있다.

한기원 편집위원
한기원 편집위원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여전히 광역·기초의원 선거구 획정과 선거구제가 마냥 미뤄지면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말 기초의회 의원 3~5인 중대선거구 도입과 2인 쪼개기 금지, 광역의원 정수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미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지난해 12월1일)을 넘긴 지 4개월이 지난데다 선거구 획정안이 소위원회를 거쳐 전체회의에서 의결된다고 해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광역의원 선거구와 기초의원 총 정수가 확정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다 이후에도 각 시·도의회가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빨라야 이달 중순께 광역·기초의원 선거구가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여 그 비난의 화살은 결국 국회에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미 지방선거 공천 일정을 확정 지은 여·야 공관위도 국회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 없기에 우선 기존 선거구를 토대로 공천신청을 접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각 시·도 공관위는 지난달 말 첫 회의에서 신청 선거구는 제7회 지방선거 선거구를 기준으로 신청을 접수하고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면 조정되는 선거구에 한해 재신청을 받기로 의결했다. 국민의힘도 기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 반복되는 지방선거 선거구 늑장 획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출마자들의 면면을 살피고 검증할 수 있는 유권자의 시간을 국회가 빼앗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비후보자들은 그야말로 ‘호환(虎患)’이 따로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관련법을 늑장 처리해 애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 꼴이니, ‘호랑이 기침 소리’에 예비후보자들의 애간장이 타들어 간다는 말이 결코 무리는 아닌 듯싶다.

그동안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기세에 눌린 지방의원들이 지방선거 시기만 다가오면, 지역 국회의원을 보고 마치 호랑이를 본 것처럼 혼비백산하는 어이없는 광경을 우리는 참 많이도 보아 왔다.

조선 11대 왕인 중종도 호랑이를 퇴치하기 위해 직접 나설 정도로 전국은 호환(虎患)으로 몸살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이 딱 그 시절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호랑이를 기른 기록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한 여인이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아와 키우게 되었다는 건데, 당시 그 어려운 시대에 호랑이는 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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