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장.
당시 법사위 소속이던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이던 윤석열을 증인으로 불러세워 놓고 이렇게 물었다. 당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 둘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때였다.
“우리 증인은 혹시 조직을 사랑합니까?” 윤 당선인은 이렇게 답했다.
"예,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이 두 문장이 결과적으로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 윤석열'로 만들었다. 26년간 검사 외길을 걸었던 그의 ‘사랑학 개론’이다.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문재인 정부에 발탁되면서 정치와의 운명적인 ‘사랑’, 엄밀히 말해 ‘국민과의 사랑'의 시작이었다.
지난해 한 유튜브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캐치볼을 즐겨 했고, 축구와 야구를 다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고르라고 하면 야구를 훨씬 좋아했다"고 야구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로 올라가기 전 대전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친 윤 당선인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지지자들을 향해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두 차례 고백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달 1일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거룩한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힘차게 도약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 나라를 아끼시고 사랑하는 목회자님들께서 더 큰 기도로 힘을 실어 달라”고도 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대통령을 들자면 단연 우루과이의 ‘호쎄 무히카’가 꼽힌다. 취임시 52%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2015년 퇴임시 지지율은 무려 65%였다.
비록 가난한 그였지만 이 시대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았다.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개방하고 자신의 월급 95%를 NGO단체에 기부했다.
절묘하게도 윤 당선인의 청와대 개방과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아직 청와대가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왕 국민에게 돌려줄 거라면 당선인의 국민들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나는 의미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이 국민을 향하길 바란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아시아 빛나는 황금시대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중략)/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타고르가 이 시(詩)를 쓴 시기는 1929년,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 식민지배하에 숨쉬기도 어려울 때 그는 우리를 위로하는 시를 읊었다.
어떤 국가든 높은 정신 문화는 국가의 근본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제발전에 치중하느라 소홀히 여겼던 ‘애민(愛民)’을 기본으로 하는 정신문화를 이제는 다시 되돌아볼 때가 되었지 않나 싶다.
윤 당선인도 이제 과거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돌아보고 그 애민의 가치를 탐구해 지친 국민을 위로해 주길 바란다.
이제 ‘아시아의 등불’에서 ‘세계의 등불’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윤 당선인의 국민과 세계를 향한 ‘사랑의 의지’가 필요하다.
대문호(大文豪)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사랑’이란 대체로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다.
사랑은 향기를 품은 ‘꽃’이며 그 속에 스며든 애잔함이다.
결코 감정을 거래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임을, 이 새봄에 윤 당선인이 헤아려 보길 기대한다.
윤 당선인의 어퍼컷트에 깃든 검은 눈동자가 야구든, 국민이든, 성직자든, 대체로 그 '사랑의 등불'이 국민을 향하는 '아름다운 길' 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