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립적이고, 국민의 신뢰가 담보되어야 하는 헌법기관이다. 특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헌법상의 독립기관인 선관위는 그 어떤 기관보다도 국민적 신뢰가 형성되어야 그 운영에 있어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선관위가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국민들의 신뢰 형성은커녕 불신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에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후보자 지명부터 임명 강행 그리고 꼼수 임기 연장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조해주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의 사퇴 논란으로 선관위는 이미 지난 1월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조 전 상임위원의 즉각 사퇴와 관련하여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 및 사무처장 등 지도부가 긴급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고, 2,900여명에 달하는 선관위 전 직원이 사퇴 촉구 움직임을 보이자 조 전 상임위원이 꼼수 임기 연장을 획책하다 백기 투항하고 사퇴한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관위의 首長(수장)인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의 명분 없는 사퇴 거부가 국민들의 어안을 벙벙케 하고 있다. 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부실로 인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던 노 위원장이 지난 8일 “미흡한 준비로 혼란과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담화문을 발표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선거가 마무리되면 당연히 자진사퇴로 선거관리 부실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국민들의 바람과는 전혀 달리 ‘마이웨이’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6일 전국 17개 시·도선관위 중 서울을 비롯한 13개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과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및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상임위원 등 상임위원 15명의 공동 명의 건의문을 통해 노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노 위원장은 17일 열린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부족한 부분 채우겠다, 앞으로 더 선거 관리를 잘하겠다”는 東問西答(동문서답)으로 전날 상임위원 15명의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노 위원장은 사전투표 혼란을 빚었던 지난 5일 토요일이라는 이유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총괄하는 선관위 首長(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으며, 주요 보직인 선거정책실장·선거국장의 교체만으로 이번 사태를 무마하려는 태도는 ‘공은 자신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라는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전국 17개 시·도선관위 중 13개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 등 15명의 상임위원이 불신하는 선관위원장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이미 ‘無信不立(무신불립)’ 상태에 빠진 국가의전서열 6위인 노 위원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선관위의 땅에 떨어진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노 위원장의 즉각적인 자진사퇴가 정답이다.
바라건대, 노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자진사퇴라는 책임지는 자세를 통해 ‘제2의 조해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2,900여명의 선관위 구성원들에게 조직에 부담을 준 首長(수장)으로 영원히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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