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의 공식선거운동 시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일부터 오는 3월 8일까지 22일 동안 여야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걸고 乾坤一擲(건곤일척)의 한판 승부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여야 후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치열한 정책 대결의 장으로 불타올라야 할 20대 대선이 현직 대통령의 참전으로 인해 희한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 다만, 그러나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 할 것이라”고 답했다. 윤 후보의 이런 인터뷰 답변이 있은 직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 윤 후보를 맹비난하며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우기에 나섰고, 특히 친노·친문 진영의 좌장으로 통하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이재명플러스 앱에 올린 글에서 “어디 감히 문재인 정부 적폐란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고 윤 후보의 발언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민주정부 4기 수립을 위해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나 이 전 대표가 윤 후보를 비난하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워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나가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대 대선을 불과 20여일 남겨 놓은 시점에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직 대통령이 제1야당 유력 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에서는 어처구니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10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윤 후보가)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발언했다는 청와대 참모회의에서의 문 대통령 발언을 곱씹어 보면,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인터뷰 발언에 대해 신경질적인 과민반응을 넘어 자신이 이번 20대 대선에 직접 참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윤 후보에 대한 격노에 힘이라도 얻은 듯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여권에서도 연일 “다시는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이번 대선전을 끌고 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 대통령의 이번 윤 후보를 향한 발언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발언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지 않아도 ‘87 체제 이후 역대 모든 정권에서 대선을 앞두고 중립내각을 구성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번 20대 대선을 앞두고 중립내각 구성은커녕 선거 주무부처 장관들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로 임명하여 공정선거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이 스스로 명백한 대선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몸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인터뷰 발언이 속으로는 어땠을지언정 “검찰총장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것의 연장선상이 아니겠느냐?”고 웃어넘기는 아량을 보였어야 한다. 국민들이 임기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제1야당 후보에게 격노하며 대선에 참전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닌 넉넉하고 통 큰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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