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눅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안도현 시인의 등단작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일부다.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전봉준 장군의 모습 중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한컷인 상투 머리인 채 일본군에 체포돼 압송되는 장면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청일전쟁 와중에 동학혁명을 이끈 것이 화근이 돼 붙잡힌 전봉준 장군은 사진에서 가마를 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일본군이 그를 특별대우해서가 아니라 체포될 때 다리를 몽둥이에 너무 세게 얻어맞아 걷기가 힘들 정도로 다쳤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일찍이 사람을 전사로 만드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들풀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제 나라 백성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조선의 무력함을 생생하게 드러낸낸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를 쓸 당시 안 시인은 해직 교사였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쓴 시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다.
또한 이 시기 시인은 ‘시와 현실의 관계를 극단까지 몰고 갔다'고 훗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외롭게 농민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장군의 압송 장면이 시인에게는 외로움을 넘어 극단의 쓸쓸함까지 내면 깊숙이 데자뷰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코 앞인데 어찌 된 일인지 유력후보 부인들의 모습이 코빼기도 비치질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누구한테 몽둥이찜질이라도 당했다는 건가.
이젠 전 국민이 알게 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는 과잉 의전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돼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가 하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경우 허위 이력, 주가 조작, 무속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어찌 됐건 후보 배우자가 각종 의혹에 휘말리는 일은 국민에게 참 불행한 일이다.
오죽하면 영국 더 타임스는 ‘한국 대선 후보 부인들이 비호감 선거 대결에 말려 들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유권자들이 낙담하는 모습을 타전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니 창피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두 김씨 모두 사과 이후에도 추가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점이 부담돼 끝내 국민 앞에 나서지 못한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니까 최대한 낮은 자세로 유권자 눈높이에 맞추려 했지만 후보보다 높은 비호감도를 극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두 김씨에게는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숨기 바쁜 남루한 선거 일정이었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경우 상대측의 공격 타깃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전에서 이·윤 두후보는 부인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너무 커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민 앞에 면목이 없게 됐다.
선거기간 내내 후보는 전장터에 나가 싸우는데 부인을 집만 지키게 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에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으로도 짐작된다.
당락을 떠나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에게 권하고 싶다.
선거운동이 끝나는 날 저녁, 부디 부부가 창가에 나란히 앉아 달빛에 눈을 한번 씻어 보시라.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왜 선거기간 동안 함께 국민 앞에 나설 수 없게 되었는가를 자문해 보시라.
그리하여 그 어떤 흔들림이 다음 날 아침 눈부심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연 왜 이렇게 서러운가를 가슴속에 새겨 보시라.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민초를 향한 고단한 여정’과 국민 속에 시로 스며든 시인의 ‘쓸쓸함’에 대해서도 탐구해 스스로 애간장을 녹여 보길 감히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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