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과 사천(私薦)의 경계 무너지면 선거필패는 당연지사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18대 총선 공천 당시, 친박계로 분류된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해 ‘공천학살’이란 말이 회자됐다.
오죽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울분을 토했을 정도의 ‘몰살(沒殺)’에 가까웠다. 이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정당사에서 각종 선거를 앞두고 자행된 공천과 관련된 질곡은 여야를 뛰어넘는 왜곡과 굴절의 역사였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국민의힘 공관위의 대전시장 유력 예비후보 컷오프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하기 힘든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자신들이 곧 권력을 쥐게 될 예비여당으로서 뭔가 달라져야 했으나 과거의 그 피눈물의 ‘공천잡기(公薦雜記)’ 역사를 또 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컷오프 된 특정인을 두둔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둔다.
전대미문의 ‘공직선거 3연패 공천배제’는 누가봐도 ‘정치보복’이고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기획된 공천 심사결과는 소수 몇사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지역정가에 파다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번 특정인을 배제한 국힘의 컷오프는 결단코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다.
공관위의 이번 조치는 누가 봐도 타의에 의한 인적 쇄신책에 불과하다. 이런 무원칙한 컷오프는 효과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상식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참으로 딱하다.
본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주)코리아정보리서치 중부본부에 의뢰해 지난 7~8일 대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1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대전시장 국민의힘 후보로 누가 더 적합한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4.9%가 박성효 전 시장을 선택했다.
이어 이장우(15.4%) 전 국회의원과 정용기(15.0%) 전 국회의원이 2위 자리를 놓고 초접전을 벌였고, 정상철(8.9%) 전 충남대학교 총장과 장동혁(8.4%) 전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오차범위 내에서 2위 탈환 가능성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 1위 후보와 꼴찌 후보가 컷오프된 꼴이 되었다.
공직선거법상 누구나 출마 자격만 갖추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인의 권한이며 현행법상 유권자인 국민과의 약속이다.
국힘공관위가 과연 왜 뜬금없이 ‘공직선거 3패 출마제한’제도를 도입해 유력후보를 ‘저격’하는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정인에 대한 대전시장 출마 저지가 국힘에 도움이 된다면 절대권력을 쥔 공관위가 아니라 최고위가 나서 그런 의사를 그저 정치적으로 표명하면 될 일이었다.
국힘은 막대한 국고지원을 받는 공당(公黨)이다. 아무리 공관위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받았다해도 공당으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의무이자 국민에 대한 기본도리이다.
더구나 국힘 입장에서 대전은 정치적 험지(險地)다. 따라서 십수년 간 3연패를 당할 만큼 더불어민주당의 위세가 강한 곳이었다는 점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국힘 공관위는 그 위상이 국민 앞에 이 선을 지키지 못한 단지 ‘완장 찬 세력’으로 전락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대오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게 무슨 수권정당의 행태인가. 심지어 사실상 ‘외주공천’을 염두에 둔 컷오프라는 말까지 들리고 있으니 국힘 입장에서 보면 오욕에 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상향식 공천이 답이겠지만 지방선거가 불과 40일 앞이다. 이 같은 후진적 정치행태는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마땅하다.
마(魔))가 낀 '야바위 공천'이라면 시정하는 것도 진정한 용기이다.
그렇다면 명쾌한 용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공천과 사천(私薦)이 경계를 넘나들 때 선거필패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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