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국회 입성

2008년 4월, 1993년 2월 체육청소년부장관을 그만둔 지 15년 만에 18대 부여·청양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주변에서 내게 아무리 국회의원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다. 꼭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군 생활 하는 내내 정치권의 유혹이 있었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던 것은 잃어버린 국방 10년과 지역 발전 때문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으로 인해 허물어진 안보가 걱정되었다. 공직을 그만 둔 야인으로선 아무리 안보를 떠들어도 공염불이었다. 신문 한 줄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현실을 절감했다. 늦은 감은 있었지만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안보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는 신념과 충정, 그리고 낙후된 고향(부여‧청양)발전을 위하여 출마하라는 고향 선후배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아무도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게 18퍼센트 뒤졌고, 투표 당일 출구 조사에서까지 나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개표 시작부터 우세를 보였고, 끝내 19퍼센트 차로 당선되었다. 초선의원으로 18대 국회의원 중 고령 서열이 네 번째였다.

18대 국회 내내, 나의 상임위 활동은 국방위원회였다. 한 번 꺼낸 말은 시정될 때까지 계속해 바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삶을 시작한 그날부터 내가 갖게 된 것은 실망감이었다.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수두룩했으나, 늙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믿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 쏟아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전체 국회의원 299명 중 예상 외로 많은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부여-논산 간 국도 확포장 사업, 탄천-부여 간 국도 확포장, 공주-부여-서천 간 고속도로 등의 사업을 3~5년씩 앞당겨 준공시켰다. 2011년 9월 13일 평택에서 아산-예산-청양-부여 간 고속도로 86.3km 건설(2조 2457억 원)로 충청내륙을 관통하도록 하는 등 서해안 시대를 열었다. 집권 여당도 제1야당도 아닌, 자유선진당으로 어느 누구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가와 국민 그리고 지역구를 위해 소신껏 일했다.

임기 4년 동안 상임위 활동은 국방위원회 위원이었다. 관련 내용은 20장에 수록했다.

 

국립종합대학교로 승격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전통문화학교를 의원 입법으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설치법안을 발의했다. 2011년 6월 23일 제301회 국회 제6차 본회의에서 출석 의원 205명 중 찬성 193명, 반대 5명, 기권 7명으로 여야를 초월해 통과시켰다. 18대 국회의원들에게 감사드린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야를 넘나들며, 반대토론을 준비하고 있던 심재철, 김영선 의원 2명을 개별적으로 설득시켰다. 반대 의원들의 이유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립학교를 통과시키지 않으면서 많은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종합대학(석·박사)을 어떻게 통과시키는가’를 내세웠다.

법안통과에 협조한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말을 빌리면 말 그대로 “깜짝 놀랐다”였다. 학교 명칭이 대학교로 바뀌면서 석·박사과정까지 포함된 국립종합대학교 설치를 그는 이해 못했다. 의원들은 안건 발의 의원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찬성반대 투표를 한다. 많은 의원들은 나에게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19대 국회의원에 또 당선되겠다는 말로 대신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1995년에 대학유치추진위원장으로서 한국전통문화학교 설립을 주도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에 이르러 종합대학교 승격까지 국회의원이 되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95년에 시작해 2011년에 마무리함으로써 장장 16년 만에 끝을 맺었다. 고향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2008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준 부여, 청양 군민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이로써 충남 부여군의 한국전통문화학교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국립종합대학교로서 대학원을 신설하여 석·박사과정을 설치하는 등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전통문화교육의 중심교육기관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또한 종합대학으로 승격 전 과거 이 학교를 졸업한 모든 졸업생에게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졸업으로 소급해 대우하기로 전문에 두었다. 내 평생 해온 손꼽히는 일 중의 하나로 기록될 일이다. 이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부여군민, 충청도민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1995년 대학교설립추진위원회 위원 500여 명의 그간의 노고를 돌에 새겨 길이 기억하고 싶다.

고향을 위해 한 것이 무어냐고 내게 묻는다면 “겸손을 떠나 감히 생각지도 못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설립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육군대장과 장관을 하고 15년 후 72세에 국회의원 한 것은 고향발전을 위한 것이지 감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또 하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고 진정 지역발전을 위하여 공약을 앞세우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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