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권 기자
조준권 기자

요즘 기자 활동은 행정기관에서 전달해 주는 보도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생색낼 수 있다. 애써 취재할 필요가 없다. 

기자의 사명감으로 힘들게 취재한 기사들은 오히려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고,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지인들은 종종 필자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느냐', '적당히 타협하면 편할 텐데...'라고.

그럴 땐 '내가 멍청한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나의 몫이며,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필자 스스로 천생 기자였음을 각인시킨 사건들을 되짚어 본다.

먼저, 금산군 제원면 소재 월영산 출렁다리의 안전 문제다.

필자는 출렁다리 시공 초기부터 현장을 맴돌았다. 짧은 식견으로도 공사현장이 위험천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금산군은 관람객의 안전은 뒷전이고, 마치 개통에만 몰두하는 것 같았다.

 

금산군 월영산 출렁다리 안전진단 보고서 캡처 / 금산군 제공
금산군 월영산 출렁다리 안전진단 보고서 캡처 / 금산군 제공

필자는 공사현장 관계자가 귀찮아할 정도로 현장에 관해 묻고, 지적하고, 타 지역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견학까지 하며 월영산 출렁다리와 비교했다. 금산군 입장에선 기자가 생트집 잡는 것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단 0.1%라도 부실시공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필자의 줄기찬 경고에 금산군은 전문회사에 출렁다리의 안전진단을 의뢰했고, 필자가 지적한 대부분에서 부실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금산군은 지적된 부분들에 대한 보강공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위험성은 남았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중순경 필자는 대낮 금산군청 안뜰에서 한 공직자에게 얼굴을 들이받히는 폭행을 당했다. 박범인 금산군수가 안전진단 현장에 참석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는데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참석 요청을 받긴 했지만 날짜와 시간을 전달받지 못한 필자에겐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콧등이 찢어져 피가 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필자를 두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던 가해자와 공직자 2~3명의 모습도 아직 눈에 선하다.

박범인 군수 측은 폭행 사건과 관련해 수차례 화해와 회유를 시도해 왔다. 하지만 필자는 거절했고, 그 후 사법기관으로부터 내사를 받았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내사였다.

필자에게 각인된 또 하나의 사건은 금산군의 상징인 기관 표장 도용 건이다.

지난 9월 금산 곳곳에선 군의 상징 로고 등을 도용한 상품세트가 나돌았다. 포장지에 금산군 로고와 제41회 인삼세계축제 포스터 디자인을 도용한 이 상품세트는 누가 봐도 금산군이 생산 판매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한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제작한 상품에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상징인 로고와 슬로건을 새기고, 축제 홍보 포스터 디자인 등을 무단 사용해 물의를 빚고 있다.(사진=(좌)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제작한 골프공 상품 포장디자인, (우)제41회 금산세계인삼축제 홍보 포스터 / 뉴스티앤티)
.(사진=(좌)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제작한 골프공 상품 포장디자인, (우)제41회 금산세계인삼축제 홍보 포스터 / 뉴스티앤티)

취재 결과 해당 상품은 금산군의 한 공직자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상품에 자신의 특허를 적용시키고 금산군의 상징을 넣어 포장 디자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자가 취재를 시작하자, 금산군은 하루 만에 해당 상품에 대한 상표권 사용을 승인 처리하는 졸속 행정을 보였다. 그러나 사용승인 문서의 내용은 군 관계자들이 취재에서 응답했던 것과 상반됐고, 이에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회유와 협박이 잇따랐다.

이제 2024년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금산군은 새해를 맞아 곧 승진인사를 발령할 예정이다.

월영산 출렁다리 공사를 주관했던 부서장은 부실 공사에 대한 책임은커녕, 요직에 있다가 다시 최고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금산군은 앞전 인사 승진에서도 매관매직으로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불평등한 인사는 공직자들에게 사기 저하와 함께 여러 악영향을 끼칠 뿐이다.

조직은 보편적으로 최고 책임자의 성향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책임자는 냉철하게 판단하고 항상 맑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흔들림이 없고 썩지 않는다.

2024년 새해에는 금산군에 맑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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