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로 윤필용 예비역 장군을 찾아가다감옥에서 나왔지만 윤필용 장군은 여전히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나는 전투복을 입고 대방동에 살고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 싶어 몸을 사렸지만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벨을 눌렀다. 낯익은 운전기사가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밀고 말했다.“아무도 못 오시는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면서 문을 열었다. 현관까지 나온 윤 장군도 나를 확인하고는 집안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해관 엄마, 이진삼 대령 왔어”윤 장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형님, 고생하셨습니다.”“이
지난 9월 27, 28, 29 2박 3일간 거행된 제11회「효문화뿌리축제」는 성공 축제의 모든 장점을 갖추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청(청장 박용갑)이 2009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예전부터 뿌리공원을 지켜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는지. 외형적인 것뿐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도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과거 축제는 정보전달 수단이요, 일종의 응집력, 단결력 부여장치 중 하나였다. 종교의식도 다르지 않았다. 결속력을 다지고 풍요를 기원하며, 먹고, 마시고, 더불어 즐기는 형식이다. 현대라고 의미가 크게 변한 것은
진급심사대령 진급심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심사위원 명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화로 여기저기서 알려왔다. 위원장 양원섭 소장을 비롯하여 전두환 준장, 김재명 준장, 우종림 준장, 나동원 준장, 김영동 준장, 배성순 준장 등 7명의 장군이 심사위원이었다.진급발표 후 감찰감 양원섭 장군 방에 차규헌 소장, 전두환 준장 셋이 모여 전화로 나를 불렀다. 진급심사위원장이었던 감찰감 양원섭 장군이 말문을 열었다.“이 중령, 내가 대령 시킨 거 아니야. 이진삼 기록카드를 들고 모든 위원들이 진급시켜야 한다고 해서 제쳐 놓았어. 만약 안 되면
버티고 살아남다“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것이다.”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15사단에서 13개월이 지날 무렵, 1974년 4월부터 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버티고 살아 있으니까 서울 육군본부의 장군, 대령 선배들이 ‘이진삼을 빨리 서울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진급시켜야 한다’는 소식이 전방까지 들려왔다. 대령이 되어야 하는데 15사단의 부연대장으로는 진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7사단, 15사단, 27사단과 군단까지 대령 진급 해당자들이 40여 명이었다. 부연대장으
노란 편지의 의미삶이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더러 맴돌기는 하지만 한 자리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이고 흘러갈 수밖에 없다.1973년 3월 23일, 윤필용 사건으로 15사단 부연대장으로 쫓겨 가기 일주일 전 일요일 오후, 8사단 박노영 사단장은 주말을 빌어 전방으로 온 우리 가족을 관내인 산정호수 근처 조용한 식당으로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사단장이 대대장 가족을 불러 식사하는 예는 극히 드문 일이다. 그 자리에서 박 사단장은 내게 “서울 소식을 들었나?” 하고 물어왔다. 못 들었다고 대답하자 윤필용 사건을 알려주었다.
칼자루 쥔 강창성육사 8기 윤필용 장군과 동기생 강창성 장군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평상시 표면화되진 않은 상태였다. 많은 선배와 후배들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갔다. 윤 장군과 친할수록 더욱 그러했다. 윤 장군이 아끼던 육사 11기 권익현(보안사), 손영길(수경사참모장)을 비롯하여 12기 정동철(보안사), 이광근(보안사), 13기 황진기(보안사 인사과장), 신재기(육본진급과), 14기 배명국(보안사 인사과장), 박정기(수경사 비서실장), 그리고 15기인 이진삼(보안사 인사과장)을 포함했다. 이 사건으로 총 8명이 전역조치 되었
대한민국을 요만큼 잘 살게 만든 주역들이 있다.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이 바로 그들이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이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들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외국에 나가 보면 안다.런던에서 팔리는 전자제품의 30%가 삼성전자 제품이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자동차 회사는 현대자동차다, 모두 일본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다, 대영제국의 저 콧대 높은 수도와 세계자동차 산업의 메카에서 우리가 일본을 위협하게 된 이 일들을 기적이라는 말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두꺼비 두어 마리낚싯줄 걸린 듯이담 위에 매달려서온 동네 구경하네뙤약볕삼복더위에등짝마저데었나봐!쓴 오이 쌉쌀한 맛건강식 면역식품참살이 되었다고울퉁불퉁 돌기들이겁주는도깨비방망이위세 등등흔든다.- 심천 배정태 시인의 -
저희 대대는 이 없습니다5군단장이 8사단 1개 대대를 순시하겠다고 사단에 지시하였는바 8사단에서는 21연대 3대대를 순시하도록 보고했다. 모자와 양 어깨에 번쩍번쩍 하얀 별 3개씩 총 9개의 별을 단 그 이름도 무서운 유병현 군단장이 차에서 내렸다.나는 부대대장, 중대장 참모들과 도열하여 경례하고 군단장을 안내해 대대장실로 향했다. 군단장은 대대장실 입구에서 영접하는 사단장 박노영 준장, 연대장 노태우 대령과 악수하며 인사했다.빈약한 토막사 대대장실에서 브리핑을 받던 군단장이 갑작스레 취사장으로 향했다. 군단장은 취사병들의 사타구니
구름 한 조각하늘에 떠 간다 가을 하늘은사면 끝이 없는거대 스케치북 그리고 싶은 건마음껏 그리고지울 수 있는만능 스케치북 구름 한 조각드높은 하늘 바라보며그리운 얼굴아버지의 모습도스케치해 보며 드넓은 푸른 초장양떼의 모습도 거대한 폭풍우도무인도 섬의 석양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설레임과 그리움의 추억이꽃구름처럼 펼쳐지는 가을의 문턱에 선하늘 구름- 이경옥 시인의 -
8사단 21연대 3대대장1972년 1월 27일, 8사단 21연대 3대대장으로 부임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경기도 포천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처음 부대에 도착해 파악한 것은 병사들의 훈련 상태였다. 지휘 방침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처럼 병사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첫째도 임무, 둘째도 임무, 셋째도 임무였기에 임무수행을 위한 병사들의 훈련 상태를 강조했다.전투의 3대 필수 요소가 정신, 체력, 전투기술이다.부대는 무엇보다 초급간부인 분대장, 선임하사, 소대장, 중대장에게 달려 있다. 한번은 소대장들의 BOQ(독
작은 게 홀로 떠서어두운 밤 밝혀주면서도외로움 견뎌내는 달 쉬지 않고갈 길 흘러가는언제나 낮은 곳만 선택하는겸손한 물 더러운 똥오줌마지막 주검도다 덮어주고 받아주는정직한 흙 오직 한 자리에옆도 넘보지 않고 불평 없이그늘이 되고 기둥이 되어주는 나무 거부하지 않고어느 물이나다 수용하는 가슴 넓은 바다처럼- 조남명 시인의 -
지천명 중간쯤 물든 하늘금가루 뿌려놓은 청자항아리 같아요 서쪽하늘 가까우니 쉬어가자고게으름 뭉게뭉게 피워보자고 있는 듯 없는 듯솜사탕 살포시 잡아당겨 흩뿌려주고 가는 듯 마는 듯황홀하게 금가루 뿌려주며청자항아리 수놓아 보자고 하네요- 김주희의 -
미인 아닌 자누가 호박꽃이라 하는가 호박 넝쿨 풍성하게담장 감싸 안고 뻗으면 호박잎 된장국일등 식탁 공신이다 애호박은 볶음으로중간 호박은부침으로 입이 즐겁다 이 뿐이랴황금 늙은 호박 늙은 노모호박죽 해 드리면주름살이 활짝 호박은팔방 미인........- 이경옥 수필가의 -
긍정적인 마음잠자는 영혼을 깨우고삶에 힘을 솟아나게 하며 부정적인 마음육신을 파괴하며괴롭고 힘들게 만든다. 성공한 사람은잘 될 거야,잘하고 있어,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차고 실패한 사람은안 돼, 힘들어,짜증나,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하다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은긍정과 부정하나를 선택하여길을 만든다. 긍정적인 마음은아침에 깨어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주어진 일에 만족하며오늘이 내 인생에제일 행복한 날이라희망과 행복의 길을 가고 부정적인 마음은지금 처한 나쁜 일들을남의 탓으로 돌리고 불평불만하며과거에 붙잡혀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괴롭고 불행
샛길에서 나와때를 기다렸다. 내 꿈은 전투부대 전투군인으로 기회만 살피고 있었다. 남들은 그 좋은 부대를 왜 나오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내 길은 원래 그 길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방첩대에서 특공대장, 파월 기동대장, 부대 대공과장, 사단 보안부대장, 보안사령부 인사과장까지 7년의 기간은 샛길이었다. 화려한 버섯일수록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는 내게 있어 화려한 독버섯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 10월부터 2년 예정인 직책을 사령관에게 사양하고 1971년 8월 10개월 보직을 끝으로 보안사령부를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요즘 돌아가는 나라 사정을 보면 누구나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경제, 외교, 안보 등 국정의 전 분야가 무너지는 경고음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가 출발하면서 내건 프로젝트는 소득주도성장. 남북화해협력과 비핵화, 나라다운 나라, 포용사회 등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검증되지 않은 정책으로서 처음부터 실험용이라는 냄새를 풍겼는데, 결국 실패라는 판정을 받고 있다. 외교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일본은 우리의 적이 되었고, 미국은 한일갈등에 대해 일본 편을 드는 인상을 주고 있다.폼페이오
오는 8월 말이면 정들었던 충대 교정을 뒤로 하고 교문을 나선다. 좁디 좁은 공간이었지만, 지난 30여년간 많은 영감과 상상력을 키워준 육 동 일 교수 연구실도 문패가 바뀔 것이다. 수많은 제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뜨거운 열기속에 서로 소통했던 강의실도 아쉽지만 떠나야 한다. 나는 이제 정말 행복하고 보람있었던 지난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남은 인생동안 새롭게 펼쳐질 도전이 기대가 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공수부대 마크가 아깝네1970년 10월 15일, 소령으로 8사단 보안부대장에서 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명령을 받았다. 1970년 10월 14일 오전 이‧취임식을 마치고 나자 5군단 보안부대장 김원태 대령이 내게 5군단장에게 인사드리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신고나 인사를 꼭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군단장을 예의상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군단장은 이병형 장군으로 6·25전쟁 때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군단장은 사단 보안부대장이 어디로 가든 관심 없는 직책이다. 군단장이 식사하러 갈 때 식당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하는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결과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수많은 선택은 우리의 삶을 직조하여 그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답을 찾은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답을 찾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해를 끼친다.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300명인데 국민 중 대다수는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싸우고 잔꾀 부리고, 권모술수를 쓰며, 놀고먹는 의원들로 국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