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가오'를 팽개친 언론과 시민단체
[김강중 칼럼] '가오'를 팽개친 언론과 시민단체
  • 김강중 기자
  • 승인 2020.05.25 15:1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기(文氣), 의기(義氣) 저버리면 존재가치 없어
김강중 편집국장

'가오'란 무슨 뜻일까. 종종 허세를 부릴 때 회자되는 낱말이다.

'가오'는 일본어로 사람의 얼굴을 뜻한다. 하지만 체면, 명예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벌이가 시원찮은 조폭들도 '가오'를 위해 외제 차와 명품 옷에 매달린다. 쥐뿔 없어도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자존심은 한낱 미물인 난초에게도 있다. 시조 시인 가람은 '난초'를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라고 노래했다.

매화 또한 일생을 얼어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처럼 부정과 훼절을 경계함이 선비의 덕목인 것이다.

하물며 자존심을 먹고산다는 오늘날 기자는 어떠한가.

돌아보면 필자가 기자가 되던 시절만 해도 교사보다 기자 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우리 사회로부터 기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자들도 지사(志士)적인 면모를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개(狗)에 비유하면 정치, 자본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감시견임을 자임했다.

초년병 시절 기사를 마감하고 술자리에서 취기가 돌면 ''쩐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며 호기를 부렸다.

그때만 해도 기자는 기사만 잘 쓰면 됐다. 소위 특종 '생기사'를 잘 쓰면 편집국, 출입처에서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언제 부터였을까. 아마도 언론이 난립하면서 시작된 듯싶다. 대다수 언론이 사세(社勢) 신장의 이유로 광고와 신문 확장을 강요하고 있다.

뿐인가. 콘서트 티켓, 운동 경기 입장권 판매 영업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란 소신은 간데없고 영업력이 없으면 밥줄 부지도 어려운 지경이다.

세월이 흘러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맞았다. 그런데도 신문사 사주들은 보지도 않는 어제의 신문을 강매하라고 연일 닦달이다.

이렇게 기자(記者)의 자존은 말살됐고 '앵벌이'나 진배 없게 됐다. 광고와 신문을 잘 팔면 능력 있는 기자로 평가되고 있다.

예전에는 정치, 사회부장 출신이 편집국장에 임명됐다. 이제는 경제부장 발탁을 우선한다. '광고쟁이'를 우대한다는 증좌다.

이제는 기관 및 토착세력의 광고만으로도 버티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들의 비리와 불법을 눈감아주고 댓가성 특혜로 공생하고 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정론과 대의는 곡필과 아세로 변질됐다. 말로는 독자를 외치지만 업자와 내밀한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영혼없는 언론은 푼돈을 위해 '가오'를 엿 바꾸듯 팽개친 것이다.

요즘 국민들을 놀라게 한 '정의연'을 보면 언론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필자도 20여 년 전, 시민운동을 해 본적이 있어 조금은 짐작된다. 인성교육을 함양하는 한 NGO에서 감사직을 맡아 3년쯤 봉사했다.

고명하신 국립, 사립대 총장 두 분과 함께 열심히 한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3년 내내 회계장부 하나 없이 독직과 부정으로 얼룩졌다.

급기야 운영자인 원장에게 감사로써 향후 민·형사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아내고 그만두었다. 거창하게 표방한 '인성'은 그를 위한 생계였고 허울의 수사였다.

그제나 이제나 NGO의 정부 보조금은 눈먼 돈임은 매한가지였다. 인성이니, 정의를 운운하며 퉁 치고 감히 문제를 삼지 말라는 태도다.

위안부 얘기가 나왔으니 '70년대 얘기를 해보자. 당시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은 대한민국의 수치였다.

인당 GDP가 천 달러 미만이어서 외국 차관에 의존 고속도로와 제철 등 기간산업을 건설하던 시기였다

100여 개에 달하는 서울시내 고급요정은 국가가 장려한 외화벌이의 하나였다.

반세기가 흘러 위안부 문제로 시민운동가가 국회 배지를 달고 돈을 챙겼다면 '왜소한 저들'에게 망언의 빌미를 범한 것이다

역사의 증인으로 포장하고 나라와 국민을 팔아 권력과 명예, 재물을 취하면 일본인들 만행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역대 부패한 권력이 하나같이 그랬다.
권력과 돈은 그 무엇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묵시적인 '먹튀' 분위기에 휩쓸리고 평정심을 잃으면 탐욕에 빠지게 마련이다. 허명의 언론과 시민단체도 사명과 본분을 잊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은 'SNS' 시대로격변하고 있다. 이제 국민 모두가 기자이고 오피니언이다.

잿밥과 곁불에 여념이 없는 언론은 권력에 대한 관찰과 비판이 시민만도 못하다.

감시, 비판을 하려면 내공과 청렴이 전제돼야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줏대마저 없는 언론은 마침내 '기레기'란 오명을 얻었다.

이처럼 신문, 방송 막론하고 단체장의 애완견으로 전락해 그들이 던져주는 밥 한 끼, 광고 한판에 춤추고 놀아난 결과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공통점이라면 부끄러운 하이에나 속성이다. 썩은 고기를 즐기면서도 ‘미진'을 멀리하는 이중성이 도드랍다.

모쪼록 기자는 세상과 때로는 자신과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문기(文氣)를 잃지 말아야 한다. 시민단체도 의기(義氣)를 저버리면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의 알 권리 명분으로 붓을 놀리고 입을 놀린다면 깍두기들의 '삥뜯기'와 다를 게 무엇인가

마음이 가난하면 내면이 강해지고 모든 것이 선물이다.



추천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민들레 2020-06-03 10:00:23
변화를 위해서 김기자님. 파이팅

김덕만 2020-05-27 08:03:57
잘 봤습니다.

2020-05-25 23:52:03
역시 김강중 기자님
훌륭합니다 제가본 기자중 최고 가오기자로 익히 알고있지만 한가지 궁금한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그 기자정신 가오는요? ㅎㅎ

화가나 2020-05-25 20:32:26
그럴듯한 단체로 국민을 우롱하는 단체의 일부가 자기의 배만 채우는 현실이 싫습니다.아무리 사회가 변한다해도 기본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갑시다. 이제는 국민이 감시자가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