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건 침투] 03 베트남 전선을 가다 Ⅲ
[목숨건 침투] 03 베트남 전선을 가다 Ⅲ
  • 뉴스티앤티
  • 승인 2019.05.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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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원제 : 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이진삼 장군 / © 뉴스티앤티
이진삼 장군 / © 뉴스티앤티

삶과 죽음

베트남전과 관련해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한 사람은 강재구 대위의 죽음이다. 그는 육사 16기로 나의 1년 후배다. 맹호사단 제1연대 10중대장으로 베트남전 파병을 자원하여 1965년 9월 초부터 강원도 홍천에서 4주간의 교육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

1965년 10월 4일, 중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한 병사가 실수로 중대원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수류탄을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순간, 이를 발견한 강재구 대위가 재빠르게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침으로써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산화했다. 나는 월남 참전 요원이 되기 전이었던 10월 6일이었다. 비록 대위였지만 그저 단순 순직으로 처리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민감한 시기에 생긴 일로, 슬기롭게 대처하면 베트남 파병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 듯싶었다. 단순 안전사고가 아니라 살신성인이었다. 방첩부대장실을 갔다.

“방첩부대장님께 건의 사항이 있어 왔습니다. 부대장님, 강 대위는 살신성인입니다. 슬기롭게 처리해주십시오. 지금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윤필용 장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군참모차장이었다. 그날 이후, 베트남 파병과 강재구 대위의 죽음은 한동안 모든 언론에서 헤드라인으로 취급하였다. 국민들은 물론 맹렬히 파병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야당까지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야당의 수뇌들도 한국군의 파병을 적극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나중에 육군에서 그에게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고, 그의 이름을 딴 ‘재구상(在求賞)’을 제정, 매년 모범 중대장을 선발해 시상하며 기리고 있다. 내가 윤필용 장군을 만나 건의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또 한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은 나와 함께 베트남에 갔던 맹호부대 방첩부대 행정과장 이창수 대위다. 그는 생일에 사망했다. 맹호사단 방첩부대 본부에서 생일 축하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사복을 입고, 운전기사를 포함 네 명이 퀴논 해변으로 가던 중, 미군 유조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한국에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 야자수 그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복을 입고 가던 중이었다.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긴급 출동해 보니, 세 명은 현장에서 불에 타 사망하고 한 명은 미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헤어진 지 30분 만에 불에 탄 시신이 된 동료의 죽음 앞에 말문이 막혔다.

맹호사단 1연대 보안반장 윤성태 대위와 나는 각자의 6개월간 전투수당 690(115×6)불, 총 1,380불을 이 대위 가족 계좌로 송금했다. 당시로는 거금이었다.

 

포탄피(砲彈皮)

나는 최전선 전투부대에서 탄약부대에 탄피 반납과 포탄 수령차 왕래하는 GMC 2.5톤 포병부대 차량을 매일 접했다. 하루는 탄약 보급소로 향하는 뒤를 따라가 보았다. 200m 규모의 계곡에 105mm, 155mm 탄피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탄약중대장 최 대위에게 탄피의 양을 물어보았으나 “포탄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탄피를 반납해야 한다.”고만 말할 뿐 양은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아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가 있다. 최 대위는 월남 파병하면서 고가인 인삼을 부대 장비 상자에 넣어 운반하다가 나에게 적발되었다. 천막에 거금 2,000불과 인삼 3박스를 가지고 찾아와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기에 꺼내 돌려주고 백지를 꺼내 진술서를 쓰고 장교답지 못한 행동에 귀국 준비하라고 했다. 30분간 울면서 사정하기에 없던 것으로 하고 돌려보냈다.

“105mm, 155mm 포탄피는 한국에서 톤당 18만 원으로 3톤이면 54만 원이다.” 당시 개발지역인 서울의 화곡동, 답십리, 신림동의 방 3칸짜리 집 1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나는 군수사령관에게 건의했다. “사령관님, 탄약중대에 포탄피가 쌓여 있습니다. 한국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서울과 춘천에 군 자녀를 위한 학교(춘천제일고, 중경고) 건립 기금으로 사용하면 훌륭한 학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한미 각서(覺書)에 월남에 있는 물자는 편제 장비 외에는 한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이범준 군수사령관의 답변이었다. 내가 “탄피가 장비가 아니며, 미국이 관심도 없는 폐품 아니면 소모품입니다. 포탄피는 압축시켜 우리 해군 수송선 LST로 운반했으면 합니다.”라고 재차 요청하자 군수사령관 이 장군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탄약중대장 협조를 받아 압축한 포탄피를 퀴논 해안에 정박한 해군 LST 수송선으로 운송하는 작전을 계속했다. 2~3일에 한 번씩 현장에 들러 확인했다. 퀴논항에 특별한 임무 없이 대기 중이던 해군에 임무가 부여됐다.

1966년 5월 출장차 귀국하여 보안사령부에 들렀다. 노태우 중령은 “이진삼, 잘 왔어! 자네가 보낸 탄피 빵꾸났다. 미 국방성에서 우리 국방부로 탄피 송출 사실을 규명하라는 공한을 보내왔다.”고 했다.

한국 국방부는 답변서에 ‘탄피는 장비가 아니고 소모품이다. 한미 MOU에 해당되지 않으며, 노천에서 부식되면 공해 물질이다. 한국전에서도 전량 폐기처분한 사례가 있다’고 미 국방부에 회신했다. 탄피는 군인 유자녀 중·고등학생 등을 위한 춘천제1중·고등학교 건립 재원으로 사용된다고 그 수익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이범준 군수사령관이 애국자로 알려졌다. 이 사령관은 “군수사령부 보안부대장 이진삼 대위가 애국자입니다. 제가 아닙니다.”라고 육군본부와 국방부에 보고했다. 후에 이범준 장군은 소장으로 15사단장, 중장으로 2군단장을 역임한 후에 전역하여 강릉지역구 국회의원을 했다.

2001년 태릉 골프장에서 원로 이 장군은 육사8기 동기생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전 육군참모총장 이진삼 장군이 대위 시절 주월 군수지원사령부 방첩대장으로 근무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큰 소리로 동기생들에게 소개하였다.

 

베트콩

나는 한국에서든 월남에서든 적과의 인연이 많다. 사실은 공비를 관리하다 보니 적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주로 빈케이, 안케 계곡 등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군수로부터 첩보를 수집했다. 19번 도로를 따라가면 안욘군이라는 군 사무소가 있다. 그곳의 군수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는 아무도 만나 주질 않는다. ‘시에스타(낮잠) 타임’이라고 해서 군수도 그렇고 문 앞을 지키는 사람도 대부분 잠을 잔다.

어느 날 그 마을 근처에서 적의 포가 발견됐다. 미군이 전방에서 그곳을 향해 포를 발사했고 나는 첩보를 위해 ‘바우’라는 통역관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세 번째였다. 막 지프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보니까 마을이 조용했다. 씨에스타 타임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차를 등지고 한 걸음 떼려는 순간, 50m 전방에 검은색 옷을 입은 두 명이 논 가운데를 포복으로 접근하여 폭발물을 묻는 모습이 포착됐다. 논에는 벼가 심어져 있었다. 그들이 포복해 가는 곳의 벼가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베트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자 둘은 급히 허리를 펴고 몸을 돌려 부비트랩(폭발물 장치)을 설치하고 줄행랑쳤다. 나는 전력으로 그 둘의 뒤를 바짝 쫓아 붙었다. 함께 갔던 김종근 하사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그중 한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거꾸로 돌려 세우고는 두 팔을 뒤로 꺾고 총과 수류탄을 빼앗았다. 사단 MIG(군사정보부대)로 그들을 인계했다. 이 소식이 사단에 알려지자 장교들이 너도나도 처음 잡은 베트콩 구경을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때 나는 공산주의의 치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규모의 게릴라 작전, 말하자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1966년 2월 파병 후 베트콩을 생포한 공로로 1966년 7월 29일 뒤늦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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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2019-05-06 17:56:01
한 사람이 그 누구도 바꾸지 못한 걸 바꿀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