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원제 : 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 / 뉴스티앤티

견적훈련(見敵訓練)

작전에 앞서 적을 보는 훈련, 견적훈련을 위해 강원도 원동면 날근터로 향했다. 북한군 제13사단장 장사청을 살해하는 게 목표이며, 침투하기 위해선 아군 7사단 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을 건너야 했다. 아군 7사단 5연대 212GP에서 내려다본 북녘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솟아난 산봉우리들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강, 시야에도 잡히지 않는 끝 모를 계곡들로 둘러싸여 있다.

GP소대장 김 소위는 지도를 펼쳐놓고 눈앞의 산야와 대조해가며 브리핑을 했다. 12시 방향 계곡 사이로 숫자 3 모양의 하천이 보였다. 3자의 오른쪽 허리 부분이 바로 북한강과 금성천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깔려 있다. 구름 그림자가 3자를 거의 덮고 있어 마치 승천을 앞둔 용처럼 보였다. 두 GP 사이로 북한강이 흐르고 있고 목표, 즉 적의 13사단이 3자에서 2시 방향으로 약 10㎞ 북쪽에 위치해 있다.

금성천 도하를 위해선 적의 811GP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대안과의 이격 거리 300m~400m로 최대한 강변 쪽으로 붙어 가야 할 곳이다. 적의 GP는 분명 최대한 관측 및 사계에 유리한 곳에 있을 것이며, 더구나 접안지역은 개활지여서 은폐, 엄폐상 예기치 못한 많은 문제들이 예상되었다. 그러므로 야음을 이용해 침투해야 한다.

견적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마음 한구석엔 근심덩어리가 쌓여 있었다. 나 자신은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다 죽으면 영광이라 여기지만 남아 있을 처자식은 어떡하나. 홀어머니는?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그들을 넌지시 떠보곤 했다.

“자네들 날 쏘고 달아나는 거 아니야? 자네들은 셋이고 난 혼자다. 며칠 후면 지금 나처럼 자네들은 고향땅을 밟을 것이고, 난 지금의 자네들처럼 타향 땅을 밟게 될 텐데…….”

“걱정 마십시오. 전 대장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북에서 느껴보지 못한 인간적인 정,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인간적으로 초조하고 걱정되는 것을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D-3일 저녁, 우이동 훈련장을 옮겼다. 적의 811GP와 812GP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유사 지형을 찾았다. 첫 작전의 목표는 적의 진지나 영토를 탈환하는 게 아니라 인명살상에 있었다. 당연히 우리가 지니고 갈 무기와 장비의 양엔 한계가 있으므로 무리한 전투, 필요 이상의 전과를 탐내서도 안 될 노릇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죽지 않고 임무수행을 마치고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마지막 점검

‘곰을 길들이듯 훈련시켜라’는 말이 있다. 뜨거운 돌 위에 곰을 올려놓으면 발이 뜨거워 곰은 발을 교대로 올리게 되고 이에 맞춰 북을 두들기면 어느 시점에선 북소리에 맞춰 곰은 춤을 추게 된다. 조건반사를 이용하는 훈련이다. 근 두 달간의 훈련은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흐릿한 스탠드 불빛 아래 수첩을 펼쳤다. 작전을 위한 화기와 장비 목록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소제 기관단총(PPS-43) 4정, 동 탄창 16개, 동 실탄 800개(각자 200발), 소제 토과렙 권총 1정(조장), 탄창 2개, 실탄 30발, 북한제 수류탄 12발(각자 3발), 북한제 반탱크 수류탄 3발, 단도, 포승줄 4개(각자 1개), 지도, 나침의 1개(조장), 마취약 및 살포기 1개, 말린 찹쌀 24㎏, 고추장 2㎏, 엿 31㎏, 소금 400g, 비닐주머니, 우의 4벌, 식기 4개, 고체연료 10일분, 구급약 약간, 바늘, 실 4개. 군복은 물론 휴대장비 모두 북한군의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침투 면에서 유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탄을 현지에서 획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유서(遺書)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내려다봤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아내와 어린 것들은 남편이, 아빠가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텐데.’ 하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저승사자’ ‘호랑이’ ‘독종’ 등 내게 붙여진 별명은, 군인에게 있어 국가가 위태로울 때 자기의 생명을 요구받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군인으로서의 나’를 평가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만큼은 나 역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작전 투입 1주일 전 촬영한 사무실 사진과 유서를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준비해 놓았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초등학교 교사로 순진했던 스물네 살 시골 처녀가 나와 결혼하여 엄마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긴 세월도 아닌데 고생만 시켰구려. 미안하오. 당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베트남전에 갔던 것처럼 또다시 일을 벌여 미안하오. 하지만 군인은 목숨 바쳐 싸워야 하는 게 본분이오. 국가를 위해 ‘앞으로 나란히’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용서해주구려, 미안하오!

맺혔던 눈물이 백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에 잉크가 번졌다. 구겨버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써 내려갔다.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아내, 귀한 내 자식들. 나는 비겁한 남편,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서 가족들 앞에 나타나겠다. 깎은 손톱과 함께 유서와 사진을 봉투에 넣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유서는 없어진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죽은 후, 북한 놈들이 판문점에서 항의하면 정부는 뭐라고 할까. 시치미를 뗄까. 국립묘지에라도 갈 수 있는 건지. 행불 처리하려나. 아니야,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죽지 못하고 생포라도 당하는 날엔……. 실탄마저 떨어지면 어쩌나? 자결도 못하고 포로가 되면 그 많은 수모를 어떻게 참고 죽어갈까. 특공대장이 안 하면 누가 하나. 그래, 권총은 내게 있어 전투와 신호용이 아니라 자결용이다.’ 사생결단 의기는 날이 갈수록 확고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1차 작전, 북한군 사단장 잡으러 가다

1967년 9월 27일 수요일 오전 11시, 남녘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날, 아니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바로 그 날, 팔이 불편한 이기철을 제외하고 나와 박상혁이 같은 조이고, 백태산과 김의행이 같은 조를 이뤘다. 정규전이 아닌 특전에는 2대 2의 조별 전투가 효과적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적과의 교전 시, 한 사람이 수류탄을 던지는 동안 다른 사람은 소총으로 엄호할 수 있다. 반면 셋이 한 조가 되면 한 명이 남게 돼 역할 분담에 혼돈이 온다.

16:00경, 일행은 강원도 화천군 원동면 날근터에 위치한 아군 7사단 소속 212GP에 도착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침투할 지형을 관찰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북한강은 변함없이 승천을 앞둔 용처럼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원들과 나는 좌측상단, 혀를 길게 내민 용머리를 닮은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적의 811GP가 있는 곳으로 강 좌안에 바짝 붙어 지나야만 한다. GP 사이 이격 거리는 600m에 불과하다. 개활지인 그곳을 일단 무사통과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 비무장지대에 잠복 중인 민경대원을 사살한 뒤, 적 13사단장 장사청(43세)과 정치부 사단장을 살해하고, 적 통로상 부비트랩 등 장애물 설치 및 군사정보수집(부대 배치, 경계 상태, 장애물 설치 상태) 등이었다.

나는 GP소대장에게 봉투가 든 지갑을 건네며 보관해줄 것을 부탁했다. 김 소위는 지갑을 받으며 아무 말 없이 안타깝게 나를 바라봤다. 봉투 안에는 써 두었던 유서, 우이동 계곡에서 육사동기 원종욱 대위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손톱을 잘라 넣은 봉투가 들어 있다.

저녁식사 후, 병기를 손질하고 휴대품을 점검했다. 개인화기를 비롯해 도강을 위해 마련한 튜브, 지뢰탐지기 등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19:40경, 아군 212GP를 출발했다. 김 소위와 호송 장병 셋의 안내를 받은 대원들은 19:55경, 군사분계선에 도착, 전방을 관측했다. 침투를 개시했다. 내가 앞장섰다.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길과도 같다는데, 그들 중 누군가 문득 ‘돌아서 쏘면 어쩌려고’ 묻던 윤 장군의 말이 또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임무수행 외에 딴 생각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저들이 배신해 날 죽이고 달아나고자 한다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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