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건 침투] 02 국군 장교가 되다 Ⅰ
[목숨건 침투] 02 국군 장교가 되다 Ⅰ
  • 뉴스티앤티
  • 승인 2019.03.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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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일대기(원제 : 내 짧은 일생 영원한 조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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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무섭다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 중 유독 부레가 없는 동물이 있다. 상어가 바로 그렇다. 부레가 없으면 물고기는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춰 서면 바로 죽게 된다. 그래서 상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쉼 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몇 년 뒤 바다의 강자로 부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보다 빼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군인으로서 임무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자맥질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였다.

1959년 5월 27일, 마침내 소위로 임관했다.

졸업생의 병과(兵科)는 보병·포병·공병·기갑·통신 5개의 전투병과로 나뉘는데 나는 보병(步兵)이었다. 초급장교에게 필요한 초등군사반 교육을 6개월간 마친 그해 11월, 처음으로 보직을 받은 곳은 DMZ(demilitarized zone, 非武裝地帶)로 25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이었다. 한국은 6·25전쟁 때 UN군과 북한공산군이 휴전을 전제로 한 군사분계선과 이 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각각 2km씩 4km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할 것에 합의했다. 1953년 7월 27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첫 부임지는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GP)를 지키는 부대이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곳곳에 각종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사고가 잦았다.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지뢰가 없어졌고 성능이 떨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지뢰는 아군이나 적군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부임 초기에는 난감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선임하사관과 분대장, 그리고 일반 병들 중에 문맹자가 많아 소통이 어려웠다. 생도 시절에 배운 것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지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솔선수범, 말보다 먼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적이 지켜보는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권총 사격연습을 하는가 하면 태권도 등 각종 훈련을 했다. ‘부대의 우열은 간부의 우열에 비례한다.’는 것을 거울삼아 간부의 솔선수범으로 병사들을 감화시키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첩경이라 여겼다. 그러자 소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이 앞서는 소대장이 아니라 솔선수범하는 소대장이란 점에 한껏 고무되어 부하들이 따랐다.

한번은 소대원 7명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정찰하던 중, 병사 한 명이 용변을 보려고 미확인 지뢰 지대에 들어가다 발목지뢰를 밟았다. 10m 앞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병사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것도 잠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병사를 향해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안 됩니다, 소대장님!”

병사들은 달려들어 내 두 팔을 잡아끌었다.

“구해야 한다.”

병사들의 팔을 뿌리치며 말하자 병사들은 이번에는 한 발짝 물러났다.

“소대장님, 그러시면 5m만 들어가십시오!”

사실 그 상황에서 5m는커녕 한 걸음 떼는 것도 모두에게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막 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발목이 절단된 병사가 소리쳤다.

“소대장님, 지뢰 지대입니다. 들어오지 마십시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검으로 통로를 개척하며 7m를 들어갔다. 두 명의 병사가 내 뒤를 포복자세로 따라왔으나 좁은 통로 개척으로 교대가 불가능했다. 10m까지 접근한 나는 소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살릴 수 있다. 안심해라.”

그러자 모두가 외쳤다.

“조심하십시오, 소대장님!”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서 전우애를 느꼈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지뢰밭의 부상당한 부하를 구하는 소대장이 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사고 지점으로 들어갔다. 병사의 목숨은 구했으나 발목이 절단되는 안타까운 사고였다. 당시는 내 방식대로 솔선수범하는 것만이 정답이고 최선인 줄 알았다. 중대장, 대대장 지휘관을 하면서는 부하들의 정신훈화 때 나의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며 부하 장병들에게 전우애를 강조했다. 이후에 소령이 되고 중령이 되고 나니까 ‘내가 소위, 중위 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멀지 않고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군의 잇따른 구타, 자살 등의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영문화에 있어 초급장교의 역할은 그만큼 막중하다. 무능한 지휘관은 전투에서 부하들을 많이 희생시킨다. 따라서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무섭다. 저 이름 모를 산과 들에서 적과 싸우다 쓰러질 적에 다친 상처를 싸매주며 물을 먹여 주고 시체를 거둬주는 전우를 생각하며 철석같은 단결을 하여야 한다. 이때에 전우 옆에는 부모님과 친구도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전우만이 있을 뿐이다. 숨을 거두는 병사들 대부분은 “소대장님, 분대장님, 위험합니다.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훌륭한 내 부하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여단장 하면서 휴가 미귀나 탈영자가 없었고 연대장 시절 2대대 5중대 일병 이병교가 사격훈련 중 총기 사고로 사망한 것과 공수특전여단장 시절 충남 대천에서 수중침투 훈련 중 53대대에서 이학수 소위가 무리한 훈련으로 과로 익사한 것 이외는 사고없이 지휘관을 하였다. 아직도 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군인의 길을

우리나라의 6·25전쟁 당시, 프랑스 대대를 이끌고 한국파병을 자원한 지휘관 랄프 몽끌라르 중령은 6·25전쟁 이전의 원래 계급은 중장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하는 프랑스 대대를 이끌기 위해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했다. 그가 이끈 프랑스군 1개 대대와 미 육군 2사단 23연대 전투단이 중공군 18,000여 명과 치른 치열한 지평리전투(1951. 2. 3.~1951. 2. 15.)에서 유엔군의 승리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낸 인물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또한 강등해서라도 소령, 중령 때의 경험을 살려 중령 대대장으로 전쟁에 지원하고 싶다. 강력한 리더십과 전투 경험을 살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육군 준장으로라도 강등하여 육군사관학교나 3사관학교 생도대장으로 보직, 초급장교들에게 지휘 통솔에 관한 교육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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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2019-03-05 16:50:55
이런 사람이 군에 계속 있어야 군 기강이 바로 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