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청년회의 충청(발기인 대표 윤경숙)은 29일 충북 옥천 관성회관에서 거행된 故 육영수(陸英修·1925∼1974) 여사 숭모제에 참석했다고 밝혔다.충청의 뿌리에서 ‘충청중심 국가발전’의 길을 찾기 위한 행보를 이어간 이번 故 육영수 여사 98주년 숭모제에는 윤경숙 발기인 대표와 박성호 사무처장을 비롯한 회원 30여 명이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했다.YC청년회의 회원들은 행사장에서 ‘온생을 바쳐 국민과 함께하신 (고)육영수 여사의 탄신을 기립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육영수 여사 탄생 98주년을 축하했다.윤경숙 발기인 대표
민선 8기 힘쎈충남이 유럽에서 도내 투자 유치 규모를 확대하고, 경제영토 확장 교두보를 놨다.독일 지방자치단체와는 새로운 교류·협력 관계를 맺기로 하고, 폴란드 자매결연 지방자치단체와는 더 큰 우정을 쌓으며, 대한민국과 충남의 위상을 높였다.◆ 외자유치 등 경제 분야 초점김태흠 지사는 6박 8일 동안의 유럽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5일 귀국했다.김태흠 지사의 이번 유럽 출장은 외자유치 등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우선 순방 사흘째인 지난 10월 31일(이하 현지 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 벨기에 유미코아 ▲ 네덜란드 A사-두
정치권이 혼돈에 싸여있다. 지난 6일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여야는 ‘네 탓’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지난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부결 이후 헌정 사상 두 번째인 이균용 후보자에 대한 부결로 인해 사법부 首長(수장)의 공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판 지연이 만연화된 상황에서 사법부 首長(수장)의 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게 됐다.더구나 당장 내년 22대 총선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
2023계룡군문화축제 & 지상군 페스티벌이 화려한 막을 올렸다.2023계룡군문화축제 & 지상군 페스티벌이 6일 오후 6시부터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개막식이 개최된 가운데, 계룡시 개청 20주년 및 ‘국방수도 계룡’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렸다.육군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에 근무하는 배우 출신 남주혁 일병과 박정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이응우 시장과 김범규 계룡시의회 의장을 비롯하여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종호 해군참모총장·정상화 공군참모총장·윌리엄 테일러 미군 2사단장·무랏 타메르 주한 튀르키예 대사 등이 참석했
지난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맞이하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서해수호 용사 55명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그들의 위훈을 기렸으며, 서해수호 55용사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감정에 북받친 듯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며 현장에 참석한 유가족들을 비롯하여 TV를 통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서해수호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은 대한민국
오늘(12월 7일)은 군인다운 자세와 장군으로서의 풍모로 선후배 모두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故 이재수 장군의 4주기다.충남 당진 출생으로 육사 37기인 이 장군은 육사 15기인 나보다 22년 후배이면서 역시 충남 청양에서 출생하여 부여에서 성장한 나의 충청도 고향 후배이기도 하다.2주전 육사 37기 동기회로부터 “12월 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故 이재수 장군의 추도식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재수 장군은 기무사령관에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지난 2013년 11월 우리 집을 방문하여 내가 보안부대에 근무한 7년 동안의 존
충북 남부3군(보은·옥천·영동)의 터줏대감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이 별세했다. 향년 91세.충남 논산 출신의 6선 의원을 역임한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과 더불어 DJ의 대표적인 충청 출신 인사로 꼽히는 故人은 1931년 충북 옥천 출생이며, 대전사범학교 재학 중 6.25 전쟁의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한 후 중간에 갑종 11기 장교로 임관했다.1960년 제5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정계에 입문한 故人은 같은 해 치러진 충북도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이마저도 이듬해 5.16으로 인해 의회가 해산되면서 의원직을 잃고 만다.
서산시(시장 이완섭)는 1일 서산시민체육관에서 보육교직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서산시 어린이집 보육교직원 한마음대회’를 개최하고, 소통과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서산시어린이집연합회(회장 박정희)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서산시 보육 발전에 기여한 모범 보육교직원 32명에게 서산시장·서산시의회 의장·국회의원·서산시어린이집연합회장 표창패를 수여해 그간 보육 일선에서 최선을 다한 노고를 격려했으며, 이어진 힐링 교육과 명랑운동회에서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배움의 시간과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
‘영원한 대선 후보’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네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다.‘전문가들이 뽑은 대통령감 1위’, ‘본선 진출 못하는 후보’, ‘경선 불쏘시개 후보‘, ‘손학규 징크스’ 등으로 대변되는 손 대표는 29일 서울시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20대 대선 출마를 위한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혔다.법대의 조영래·상대의 김근태와 더불어 문리대 손학규는 ‘경기고 출신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통하며 학생운동으로 학창시절을 불살랐고, 졸업 후 병역의무를 마치고 나서는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에 투신하여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는 대표적 인
충북미래교육포럼은 지난 11일 김수현드라마아트홀에서 제4차 정기포럼을 개최하고, 윤건영 전 청주교대 총장을 초청하여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과 인성 교육’ 주제의 강연을 진행했다고 밝혔다.윤 전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은 18세기의 첫 번째 산업혁명 이래 네 번째의 주된 산업혁명을 가리키는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은 물질-디지털-생물계를 망하는 새로운 기술들과 그 기술이 산업, 경제를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주는 것을 통칭하는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설명했다.윤 전 총장은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의 진화가
維石(유석) 조병옥·海葦(해위) 윤보선·玉溪(옥계) 유진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의 길로 들어섰을 때부터 제1야당을 陣頭指揮(진두지휘)한 충청권 인사들이다.충남 천안 출생인 조병옥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항마로 1960년 민주당의 제4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지병으로 인해 급서하였고, 충남 아산 출생인 윤보선 대통령은 제2공화국 수립 후 민주당 구파 vs 신파의 치열한 세력 다툼 속에서 “더 이상의 다툼은 안 된다”며 스스로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직에 머물고, 5.16 이후의 제5대 대통령선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 충남본부(본부장 박완주, 이하 충남본부)가 26일 발대식을 개최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전략 수립과 지방분권을 통해 지역발전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고 밝혔다.충남본부는 1 본부장·3 고문위원·1 자문위원·8 본부장 체제로 모두 40명의 특위위원으로 구성됐다.충남본부장을 맡은 박완주(3선, 충남 천안을, 충청권역본부장 겸임)은 인사말을 통해 “‘메가시티’·‘세종의사당’·‘글로벌경제수도 서울’·‘국회특위구성’이라는 국가균형발전 4대 과제를 구체화·현실화 시키는데 충남본부가 앞장서자”고 출범의 뜻을 피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 대장인 백선엽 장군이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100세.1920년 평남 강서군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6.25 전쟁 영웅’으로 ‘살아있는 전설’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인물로 우리나라 보다 미국에서 더욱 높은 예우를 받고 있다.故人(고인)은 제1사단장으로서 1950년 8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진행된 낙동강 방어선 전투인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병사들을 향해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쏘라”고 독려하면서 한국군 최초로 한미 합동작전을 통해 대승을 거두고 반격작전의 발판을
이진삼 그의 일생은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삶의 연속이었다. 국가를 위하여 싸우자고 함께 다짐했던, 전우들을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용서를 빈다. 차라리 그가 적의 흉탄에 쓰러졌다면 영광스러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라고 표현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정의롭게 살고자 노력했던 그의 군 생활은 파란만장 그대로였다. 부하들에게 강력한 교육훈련과 전투진지 요새화 등 많은 것을 강조하고 요구한 것은 지휘관 본연의 자세다.변화무쌍 세상 속에서 그의 애국심은 만고불변할 듯하다. 본인은 “머리 안 좋다”,
혼돈의 시기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을 완수한 후 민정에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고 공약을 했다. 국력을 키우고 부강하게 만든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집권 기간의 절반 즈음에 유신헌법을 만들어 나라를 더 발전시키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유신’이라는 것이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직접선거제’를 ‘간접선거제’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7년 후 유신체제는 무너졌고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1979년 10월 18일, 경제가 침체된 부산과 마산에서는 참다못한 시민들이 봉기했다. 이른바 ‘부마항쟁’으로 일컬
발탁나는 1978년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사단에서 주관하는 대대 ATT를 받고 있는 2대대(중령 조영길) 훈련장을 위문차 방문하고 있었다. 그때 사단장으로부터 급히 사단장 공관으로 오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테니스 하자는 호출로 알고 부대에 연락하여 운동복을 포함, 운동 준비를 하여 사단장 공관 테니스 코트로 가져올 것을 지시하고 사단장 공관으로 갔다.“여보 61연대장, 축하해요. 배병노 장군 후임으로 사격지도단장으로 명령이 났소. 연대장 후임자는 당신 동기생 방서남 대령으로 명령 났소.”“안 가면 안 됩니까?”“왜?”“연대장
전방 연대장1977년 8월 4일, 전방 20사단 61연대장으로 부임했다. 군에서는 연대장과 사단장을 가장 보람 있는 지휘관이라고 해서 흔히 ‘지휘관의 꽃’이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연대장은 지휘관으로서는 최고의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연대장으로 간 20사단은 전방 GOP사단이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곽영배 장군이 참모총장의 결재를 받아놓았다. 곽 장군은 내가 보안사에서, 참모장으로 모셨던 분이다. 내가 올렸던 결재를 한 번도 반려하거나 부결시킨 적이 없을 만큼 나에 대한 신뢰가 돈독했다. 내가 대대장으로 나가기 전, 육군대
공수부대 마크가 아깝네1970년 10월 15일, 소령으로 8사단 보안부대장에서 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명령을 받았다. 1970년 10월 14일 오전 이‧취임식을 마치고 나자 5군단 보안부대장 김원태 대령이 내게 5군단장에게 인사드리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신고나 인사를 꼭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군단장을 예의상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군단장은 이병형 장군으로 6·25전쟁 때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군단장은 사단 보안부대장이 어디로 가든 관심 없는 직책이다. 군단장이 식사하러 갈 때 식당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하는
윤필용과 김재규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윤필용 준장과 김재규 소장,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쁜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육사 기수로는 2기인 김 장군이 8기인 윤 장군보다 선배였지만 나이는 별 차이가 없었다.윤 장군 입장에서는 능력과 인품 특히 청렴도 등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보안사령관을 맡아 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군 통수권자를 제대로 보좌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반면 김 장군은 자신이 육사 선배인 데다 박 대통령의 동향 후배라는 권위를 내세워 윤 장군이 자기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두 사
3차 응징보복작전1967년 10월 18일 수요일, 작전지역을 강원도 지역에서 경기도 지역으로 바꿨다. 1,2차 작전으로 강원도 지역은 장애물과 적의 경계가 한층 강화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14:00경, 대원들과 함께 서빙고를 출발했다.16:30경에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으로 들어섰다. 적의 비무장지대 초소에 병력(25여 명)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17:10경, 아군 28사단 169GP에 도착했다. 나는 유서와 자른 손톱 그리고 사진 한 장이 든 봉투가 반의반으로 접혀 끼여 있는 지갑을 GP 소대장에게 맡겼다. 사물함에 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