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남부3군(보은·옥천·영동)의 터줏대감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이 별세했다. / 대한민국 헌정회
충북 남부3군(보은·옥천·영동)의 터줏대감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이 별세했다. / 대한민국 헌정회

충북 남부3군(보은·옥천·영동)의 터줏대감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이 별세했다. 향년 91세.

충남 논산 출신의 6선 의원을 역임한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과 더불어 DJ의 대표적인 충청 출신 인사로 꼽히는 故人은 1931년 충북 옥천 출생이며, 대전사범학교 재학 중 6.25 전쟁의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한 후 중간에 갑종 11기 장교로 임관했다.

1960년 제5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정계에 입문한 故人은 같은 해 치러진 충북도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나, 이마저도 이듬해 5.16으로 인해 의회가 해산되면서 의원직을 잃고 만다.

故人은 1963년 제6대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충북 보은-옥천 지역구에 출마하나, 박정희 대통령의 처남으로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선 육인수 후보에게 패한 후 1967년 제7대 총선과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패하며 세 차례 연속 패배의 아픔을 맛본다.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973년 제9대 총선에서 무소속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며 여의도에 입성한 故人은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한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정치 규제에 묶인 故人은 해금된 이후 치러진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준병 후보와 동반 당선되며 3선 중진 반열에 오른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지역구를 서울 영등포을로 옮겨 4선 도전에 나섰던 故人은 민주정의당 김명섭 후보에게 패하며 다시 한 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1989년 치러진 재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나웅배 후보에게 패하며 야인의 길을 걷는다.

故人은 이후에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북지사 선거에 나섰으나, 자유민주연합 주병덕 후보에게 패했으며,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자신의 첫 당선을 안겨준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로 돌아왔으나, 자유민주연합 어준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4선 도전에 나섰으나, 한나라당 심규철 후보에게 패배하며 4선 문턱을 밟지 못했다.

그러던 중 故人은 만 73세를 목전에 두고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에 힘입어 새누리당 심규철 후보를 상대로 설욕하면서 4선 고지에 올랐으며,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 남부3군의 군수들과 동반 탈당을 결행하여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 입당을 통해 여유롭게 당선되는 저력을 발휘하면서 5선 고지에 올랐다.

故人은 2011년 12월 남부3군 군수들을 비롯하여 광역의원 및 기초의원들과 동반 탈당하여 친정인 민주당으로 복당하였고, 4개월 후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장남 이재한 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으나, 이 전 부회장이 새누리당 박덕흠 후보에게 패배하며 故人의 뒤를 잇지 못했다.

한편, 故人 유족으로는 부인 유정순 씨를 비롯하여 딸 경례·경숙 씨와 아들 재한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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