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출산정책 재고돼야

며칠 전, 오랜 친구와 차담에서 비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른을 넘긴 나이인데 둘다 미취업, 미혼이다.
그는 교직을 정년하고 3년째 '알바'를 하고 있다. 연금으로 자식 뒷바라지가 힘에 부친다는 하소연이다.
이런 고민이 이 친구만이 아니다. 자식을 둔 대개의 친구들이 이와 비슷하다.
문제는 취업과 결혼이다. 젊은이들이 미취업으로 결혼하기 어려우니 연애를 기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지난 주 식사를 나눈 지인의 막내딸은 올해 마흔 살이다. 그녀는 가상화폐에 투자해 제법 큰돈을 모았다. 독신이지만 큰 평수 아파트와 외제차를 굴리며 여유롭다.
또 부모와 지근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 본가를 찾아 쇼핑과 외식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외롭고 힘들고 불안한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지인은 훗날 막내딸이 이것을 홀로 감당할 것을 걱정했다.
비혼을 부추기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직장생활에서 국가와 기업이 개인에게 적용하는 이중 잣대다. 국가는 아이를 낳으라며 지원을 장담한다. 하지만 사회 보육시설과 기업에서의 체감은 크게 다르다.
민간기업에 다니는 딸아이에게 육아복지를 물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더하면 1년 3개월 쉴수 있다고 한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과 보직의 불이익 여부를 질문했다. 육아 휴직 1년 중 진급심사 받는다면 불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은 경력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한다. 남녀 차별이 아닐 수 없다. 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등원과 하원을 함께 할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누군가 도움 없이는 직장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10여 년 전부터 연애와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겼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이 안 되니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남성비중이 많은 것, 여성의 고학력도 요인이다. 이래서 생긴 말이 '3포세대'다. 이후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마저 포기하는 '5포세대'로 진화됐다.
'3포(抱)', '5포(抱)'의 이유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두 딸을 출가시킨 내 경험으로도 직장과 내 집은 결혼의 필요조건이다. 소형 아파트 한 채라도 마련해야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월세, 학자금, 자동차 할부 등에 시달리며 고단한 결혼생활을 면할 수 없다. 또 과도한 보육비, 사교육비도 감당하기 어렵다. 중년에 이르면 자신감의 상실, 가난의 대물림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까닭에 청년세대는 연애하는 사람들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통계다.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이들의 생각은 비혼으로 번졌다.
장기불황에 따른 실직, 이혼 등으로 1인가구가 36%에 달한다. 세대 막론 혼자사는 그런 세상이 됐다.
젊은이들은 결혼제도에도 거부감이 없지 않다. 결혼은 새 출발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보람과 행복은 가족, 가정에 있다.
앞서 말했듯 학자금 카드 빚, 이자 등 리스크는 그들의 결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확실 시대를 사는 청년세대는 이런 위험을 감내하길 주저한다. 대신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나 그런 일상마저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한다.
필자세대는 20, 30대에 취업과 결혼을 했다. 40, 50대는 고됐지만 가족부양을 보람으로 여겼다. 그런 뒤 말년의 노후를 챙겼다. 청년세대는 어려서 IMF를 겪어서인지 기성세대와 다르다.
누구도 위험을 대신해주지 않을 거란 걱정에 다들 각자도생이다.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만 자신의 삶을 지켜낼 것으로 믿는 것이다. 결혼생활도 이런 위험이 최소이거나 극복된 상태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비혼식이 유행하고 있다. 취업이 안 되어서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좋다며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결혼을 않는 미혼이 아닌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비혼(非婚)자가 늘고 있다.
비대면, 비혼사회 결혼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은 낮은 연봉과 비싼 집값, 가족부양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성은 시집살이 가족관계가 부담스럽고 자유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가로막는 또 하나는 돈이다. '살아있는 신(神)' 돈 때문에 독거청년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고독보다는 부부싸움이 더 건강에 유익하다. 독신남자는 흡연자보다 더, 독신여성은 흡연자만큼 단명한다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우리는 올해 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분기 0.7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3분기 0.79명에 이어 4/4분기도 0.7명대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인구가 절벽이다. 머잖아 가정과 지자체, 대한민국의 희망도 절벽이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연애의 의미, 결혼의 새로운 의미를 모색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