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만희복지재단 박형만 이사장 26년째 고향 사랑 현재진행형

“여러분을 만나면 매번 저의 늘어졌던 정신력이 다시 배터리 충전하는 식으로 다시 충전이 됩니다. 우리 고향, 사랑하는 고향, 제 잔뼈가 굵어진 공주만 오면, 제 자신이 氣(기)를 받고 갑니다.”

지난 20일 오후 2시 공주시청 대백제실에서는 (재)만희복지재단의 박형만 이사장이 뜻깊은 생활지원금 수여식 및 결연식을 진행했다.

공주시 각 읍·면·동장 추천과 공주시장애인협회장 추천(지체·시각·농아) 그리고 만희복지재단 추천으로 1인당 100만원씩 총6,000만원을 지급하는 이날 생활지원금 수여식 및 결연식에는 최원철 공주시장을 비롯하여 이진삼 충청향우회중앙회 총재(전 육군참모총장, 전 체육청소년부장관, 전 국회의원)·김호일 대한노인회장·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홍경표 미국오순절하나님의성회 총회장·서만철 전 공주대 총장·코미디언 배영만·박찬호 전 야구선수·박요한 전 미국 남가주 충청향우회장과 박형만 이사장의 큰사위 이진백 대표 등 내빈들과 생활지원금을 수여받는 공주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박형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스물일곱 살 때 사랑하는 제 고향을 떠났는데, 26년째 여러분을 해마다 찾아뵙게 됐다”면서 “세상에 저보다 훌륭한 분도 많지만, 저는 특별히 미국 측에서 볼 때는 학연·지연·혈연이 없었다”며 “학교를 좋은데 나왔습니까? 공주라는 지역이 미국 사회 넓은 데에서 어떠한 가질 수 없는 지연을 갖고 있습니까? 혈연 역시 형제들 모두 다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박형만 이사장은 이어 “그런 가운데서도 늘 저는 고향의 그리움을 떠나지 않았고, 요즈음 가을이 되면,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자꾸 고향 생각을 더 하게 된다”면서 “그래서 내가 고향 일에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며 “오늘 귀빈들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했는데, 여러분 앞에 약속하는 것은 제가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서 우리 고향 분들에게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박형만 이사장은 “제가 여기 여러 단체 기관장도 계시고, 이진삼 장관님도 계시신데, 제가 살아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제가 혹시 세상을 거두더라도 제가 재단을 만들어서 이 재단이 영원히 우리 고향을 위해서 영구적으로 지속하려 한다”면서 “그래서 저는 비행기 타고 올 때는 80살 먹은 노인이 12시간 반을 와야 여기 도착하는데, 비행기는 꼭 이코노미를 타고 온다”면서 “여기 박요한 저 친구도 미국에서 같이 오면서 이코노미 타는 박 회장하고 고향 안 간다고 한다”며 “이코노미라는 게 비행기에서는 가장 싼 것인데, 이코노미를 타게 되면, 돈 몇 천불이 더 생기게 되고, 그럼 그 돈 모아가지고 여러분들 한 두 명 씩 더 드리고 가고 싶어서 이코노미를 타게 된다”고 강조했다.

박형만 이사장은 끝으로 “저는 그런 스타일이라 제 삶을 여러분 앞에 보고할 수가 있다”고 운을 뗀 후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다녀가면, 갈 때는 10시간 반인데, 그 때는 또 신이 난다”면서 “비행기 타기 전에 氣(기)를 받아서 여러분들이 다 저한테 감사한 생각을 가져보고, 저도 어렸을 때 가난한 그 생각을 하면서 신이 나서 잘 아주 씩씩하게 돌아가서 내년 10월에 더 준비해서 와야지 하는 그러한 삶에 대한 의욕을 더 받는다”며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한테 이렇게 해서 이런 거 해놓고서 언론이나 목에 힘주고 자랑하려는 것보다 제 자신이 氣(기)를 받기 위해서 여러분 앞에 매년 찾아오게 되는 것이니 여러분을 돕는 게 저도 장수를 하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한 것이고, 앞으로도 제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저 장수하도록 기도만 해주시면 된다”고 주문했다.

한편, 1938년 충남 공주시 봉황동 출생인 박형만 이사장은 초·중·고를 공주에서 마친 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27세의 나이로 독일(당시 서독)의 광부로 파견을 갔다. 박형만 이사장은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였던 이숙희 여사와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자동차 정비사업을 비롯하여 부동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그야말로 ‘America dream’을 실현한 대표적 충청인이다. 또한 박형만 이사장은 파독 광부 시절 하루 일과 중 광산 일을 마친 후에도 축산 농가에서 일을 하는 피나는 노력 끝에 낯선 타국에서 자수성가를 이룬 그야말로 귀감이 되는 분이다. 특히, 박형만 이사장은 지난 9월 24일 LA 한인타운 중심부 올림픽가에서 진행된 미주 한인사회 최대 잔치인 LA 한인축제의 하이라이트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한인사회와 미 주류사회의 우호와 단합을 상징하며 퍼레이드를 이끌 공동 그랜드 마샬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형만 이사장은 남가주 충청향우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학교법인 남가주한국학교 재단이사장으로서 미국의 한인들을 위해 수많은 봉사활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충청인’이다. ‘(재)만희사회복지재단’의 ‘만희’는 박형만 이사장의 ‘만’과 이숙희 여사의 ‘희’를 따서 재단 이름을 명명했으며, ‘(재)만희복지재단‘은 지난 1997년부터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지원금을 지원하여 지금까지 26년 동안 4억 4천 755만원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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