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대전 서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실에 흥미로운 간판이 있다. 나무 판에 적힌 글귀가 ‘고객을 춤추게 하자’는 것이다. 어떤 CEO의 경영 메시지보다 인상적이다. 고객을 춤추게 하는 경영, 고객이 덩실덩실 기뻐서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대전 사립의 명문고교 교감선생님 출신이다. 경영학이나 금융학을 전공한 적도 없다. 그저 수십 년 간 일선 교사로 일했던 터다. 그래서 금융업은 낯설었다. 어찌어찌하여 맡은 금고이사장이 되고 나자마자 석 달을 뛰어다녔다. 그 간판은 그때 지인들에게 얻은 모든 경험담을 모아 내린 결론이다.

글귀 ‘고객을 춤추게 하자’는 그의 경영지향점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경영철학이다. 좌우명인 셈이다. 그는 ‘고객이 춤을 춘다면...’에 맞췄다. ‘금고오너인 내가 누군데’하며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고객, 금고 이용 가입자에 경영 방향을 맞췄다.

그는 만년 적자이던 금고를 취임 1년 3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물론 IMF의 아픔도 겪고, 여러 차례 금융정책의 변화에 시련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취임 때보다 영업매출을 수백 배나 높여놨다. 대통령상을 수상할 때 소감은 “고객을 춤추게 했더니 되더라”고 였다.

그에게 여러 정당이 정치 입문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그때마다 "저는 국민을 춤추게 할 수 없습니다"라며 거리를 뒀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하나 입신영달하고, 명예나 얻을 욕심에는 배지를 달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 잘났다고 저마다 나서는 선거 판에 ‘국민을 춤추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존경을 받는다.

다음 달 치를 ‘5.9 대선’이 십여 일 남았다. 입이 거칠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선거전도 중반을 넘고 있다. 각 정당 후보들이 전국을 누비며 목을 돋궈 국민을 제대로 섬겨 보겠다고 외치고 있다. 섬김정치, 올바르게 나라를 이끌 대통령감이라고 침을 튀긴다.

예전의 후보들보다 허리를 숙이는 것 같다. 목례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가 "찍을 만한 대통령이 없다"면서도 "정말 저 사람들 믿어도 되느냐"고 의아해 한다. 현직 대통령도 촛불 민심으로 끌어내리고, 파면, 구속되는 모습도 봤으니 그럴 수 밖에.

충청도의 구애는 기가 차다. 법을 고쳐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겠다, 대전을 교통특별시로 만들겠다, 충남·충북을 어떻게 개발하겠다고 선심공약을 내놓고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온 고질적인 충청 민생현안을 나랏예산 모두를 당장 쏟아부어 해결할 것처럼 약속한다.

이대로라면 이들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충청도를 낙원으로 발전시킬 것처럼 외친다. 역대 대통령선거 때보다 관심을 더 갖는다. 예전의 후보들도 마치 ‘푸대접 충청도’를 해소한다 약속까지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보자의 연단 아래 운동원들만 환호하지만 실지 충청도는 무감각하다.

역시나 이번도 ‘충청도 캐스팅 보트’라는 충청도 자존심까지 건드린다. 6.29선언으로 사상 첫 민주주의 다운 직선제인 지난 1987년 대선부터 이번까지 30년간의 대선이 충청도에 던진 것은 사탕발림 식이었다. 구애하며 충청인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할 듯해 놓고, 대선 후에는 배신과 허언이었다.

1987년 제13대 대선 이후 치른 대선에서는 충청도가 그 중심이었다. ‘1노 3김’에서 맞붙어 TK-PK-호남과 충청 간의 지역 대립이 극심했다. 이후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가 부활되면서 영·호남의 사활을 건 지역구도가 견고해진다. 충청은 이후에 ‘충청민심을 얻어야 정권을 잡는다’는, 이른바 ‘캐스팅 보트’ 역할이 반복되고 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를 극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YS(김영삼)와 충청의 맹주 JP(김종필)와 3당 합당을 이뤘다. 이어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YS는 JP의 도움에 힘입어 당선됐다. 의원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충청권의 표를 끌어냈다. 하지만 95년 6.29 지방선거를 앞두고 YS는 JP를 토사구팽(兎死狗烹) 해버렸다.

YS에게 당한 JP가 자민련을 창당, 충청정치를 규합했다. 여세를 몰아 1996년 4.11총선에서 JP가 앞승했다. 직후 97년 대선 때는 어땠던가. DJ가 캐스팅보트의 충청을 잡기위해 JP와 손을 잡았다. 그래서 DJP는 내각제 개헌을 공약, 정권을 잡았다.

충청과 호남이 연합해 이른바 DJP 공동정권을 세웠다. 집권 초 총리 등 국무위원 자리도 나눠가졌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이유로 DJ는 JP와의 내각제 개헌 약속을 깨버렸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이기는 데 크게 기여한 JP와의 내각제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 충청도는 YS, DJ로부터 차례로 이용만 당했다.

그래선지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는 달랐다. 그는 JP대신 공약을 택했다. 내놓은 공약이 행정수도 충청도 이전이었다. 충청 표심이 노 후보에 쏠렸다. 이 공약으로 노 후보는 재선에 나섰던 대세론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3% 차로 이겼다.

YS, DJ에게 실망한 충청도 민심은 청와대와 국회까지도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건설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온 나라는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찬반으로 갈렸다. 그럴수록 충청민심은 행정수도 이전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곧 물거품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관습법을 이유로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 결정을 내려 무산된 것이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충청도의 정부 불신으로 커져갔다. 결국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로 바뀌었다. 이후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안을 냈고 이어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다. 이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사수를 외치는 등 수 년 간 충청권 민심은 오락가락했다.

역대 대선 때마다 충청에게 구애와 배신을 반복하는 데는 한국정치에서 충청도가 가진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고 언론인들은 지적한다. 강한 결집력을 보이는 영·호남과 달리 충청도는 유연하다. 또한, 인구수도 영호남보다 최근까지 적었다.

그래서 영.호남출신 후보나 그곳을 텃밭으로 하는 정당들은 부족한 ‘200만표’를 채우기 위해 충청민심에 접근했다. 선관위 통계를 보니 실지 1987년 대선의 경우, JP가 182만 3,000표였다. 그리고 1위 노태우, 2위 YS 간의 표차가 194만 5,000표 차였다.

첫 직선제 때 부족했던 200만 표를 채우기 위해 이후의 대선후보들이 즉흥적이었든, 계산된 것이었든 충청 표심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아니 지난해 4.13 총선 전부터 세종시를 행정수도건설공약을 내놓아 부동산값만 올려놓더니 이제 또 같은 공약을 반복한다.

후보들에게, 정치권에게 냉철해야 한다. 충청도 표를 모으기 위해 현실적인 방법까지 내놓고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충청지역과 국가발전을 위해 준비된 것인지를 따져 보아한다. 파격적인 공약일수록, 파격적인 유혹일수록 달콤하니까 말이다.

충청도를 춤추게 하는 방법은 속이지 않는 것이다. 충청도를 속이고 득표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나라를 속이는 일이다. 충청도민을 춤추게 하는 일이 대한민국을 춤추게 하는 일이다. 숱한 구애와 배신을 당한 충청표심이기에 말하지 않고 진정성을 보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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