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목사의 세상보기]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원용철목사의 세상보기]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 김강중 기자
  • 승인 2021.04.0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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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우울감 신체질환과 같은 환자일뿐....사회적 낙인 지양돼야
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을 보는 시각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인식과 지저분함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무위도식한다는 오해도 있다.

그러나 20년 넘게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내가 만난 벧엘의집 식구들을 보면 그렇치 않다. 그런 오해는 왜곡된 사회적 낙인이다.
일부 그렇다해도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사회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리 노숙인들 경우, 그들이 처한 환경이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도 없다. 당연히 지저분하게 보이고, 냄새가 나기도 한다.

또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삼삼오오 술을 먹다보니 위험한 사람, 무서운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낙인 때문인지 벧엘의집 식구들 대부분이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
주눅 들어 있고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등 우울감에 빠져있다.

노숙인 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빈곤으로 인해 가족까지 해체돼 노숙을 경험하게 되면 사회성이 결여된다고 한다.
나아가 자포자기, 분노, 우울, 자살충동 등 사회심리적 병리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거리노숙과 가정해체, 빈곤이라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 순간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벧엘의집 식구들을 보더라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우울, 알코올 중독, 무기력, 감정조절 장애를 겪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신과적 상담을 받을 것을 권하면 하나같이 거부하거나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알코올중독이 심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입원을 권유하면 한사코 자신은 문제가 없다면서 거부한다.
이는 노숙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고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노숙인 복지법에는 쪽방생활인도 노숙인 범주에 들어간다. 또한 주거로서 적절치 않은 공간에 사는 모든 이들이 노숙인에 포함된다.

심지어 UN의 노숙인에 대한 정의에는 주거뿐만 아니라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도 노숙인으로 정의한다.
부언하면 노숙인이라 함은 빈곤계층 중에서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은 모든 사람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극빈층을 말한다.

그런데 쪽방 생활인들은 자신들은 노숙인이 아니라고 극구 주장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으로 인해 노숙인을 사회 부적응자, 잠재적 범죄자 등 부정적인 인식때문이다.
보통사람이 아닌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숙인에 대한 인식과 비슷한 사람들이 바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생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행복한 우리동네의원' 정신과 의사 안병은 원장은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란 책 서문에 여러 질문과 고민을 던진다.

그 중 하나인 '한국사회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는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란 질문을 던지며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환자는 말 그대로 병에 걸린 사람,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병에 걸리면 누구나 환자가 되지만 그들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병에 걸렸을 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어떨까. 조현병을 비롯한 다른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이들은 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똑같은 환자다. 하지만 이들을 부르는 정신과 환자라는 말에는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병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정신병자라는 낙인까지 붙어 다닌다.
이 낙인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를 격리하고 추방해도 된다는 주장을 정당화한다고 한다.

이런 편견으로 정신질환자들은 몸이 아프듯 마음이 아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이 아파도 떳떳하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노숙이 마음까지 아프면 어떨까.
정말 그들은 이 사회에서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하게 마음이 아픈 것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노숙인들도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안 원장이 꿈꾸는, 벧엘의집이 소망하는 세상, 그것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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