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을 내어 준 아들아, 동생아 쾌유를 빈다'

벧엘의 집 담당목사 원용철
벧엘의 집 담당목사 원용철

수일 전 아들과 동생이 큰 수술을 했다. 간 기증과 이식 수술을 진행한 것이다.

수술은 순조로와 회복 중인데 동생은 한 고비를 넘겼다. 혈액수치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다.
조카로부터 이식 받은 간이 조금씩 기능을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걱정이 됐던 아들도 수술직 후 혈압도 높고, 맥박도 빠르고, 열도 높아 염려됐다.
다행히 혈압과 맥박은 정상으로 돌아와 오늘부터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열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높아 검사를 해보니 폐에 물이 찼다는 것이다.
그것도 약으로 말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튜브로 연결해 강제적으로 빼내야 할 정도의 양이란다.

오늘 하루도 냉온탕을 오가는 심정으로 보내야 했다.
이렇듯 요즘 하루하루는 이식 수술이 끝난 직후부터 수술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보니 애처롭다.

외롭게 인공투석기, 인공호흡기 등 수 많은 기계에 의존하며 중환자실에 혼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저리다.
그것도 사지가 묶인 채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는 동생을 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무서울까. 순간순간이 고비였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위태위태한 위기의 순간이 연속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한 고비를 넘겼다는 의사의 말이 크게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동생은 아직 2주의 시간은 더 지나봐야 이식수술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시간 또한 참 힘들고 긴 시간이 될 것이다.

돌아보면 수술이 있기 전, 아니 수술 과정까지는 우리가 선택하고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수술이 마무리 되고나서부터 회복의 시간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우리의 시간이 아닌 것 같다.

수술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 어디에서 수술을 할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몫이었다.
수술과정도 마찬가지로 집도의가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하는 것 까지는 사람의 선택과 사람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모든 수술 과정이 끝나고 나니 회복의 과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준다. 흡사 수술 과정까지는 사람의 시간이다.

그 이후 회복되기까지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도하며 빨리 시간이 흘러 이 불안과 고통이 끝나기를 바랄뿐이다.
아니 아무 변수도 생기지 않고 잘 회복되길 기도할 뿐이다.

순간순간 냉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조그만 변화에도 힘들어하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안도하며 기뻐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있지만 동생이 한 고비를 넘겨 혈액수치에 변화를 보였다는 말에 마음이 놓인다.
기뻐하고, 아들의 수술 후유증으로 폐에 물이 찼다는 말에는 다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대신 아파해 줄 수 있는 것도, 더 나은 치료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이 잘 흘러가길 바라고 기도하는대로 쾌유되길 바랄 뿐이다.

그 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제 우리의 시간을 넘어 하나님의 시간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시간은 공동체의 시간인 것과 같다.

내 아픔에 힘들어하기 보다는 가장 고통스러워할 당사자의 아픔에 연대하는 시간이다.
또 다른 나인 이웃의 아픔에 동감하는 시간인 것이다.

나의 하나님, 이제 당신의 시간입니다. 당신이 활동하셔야 할 때입니다.
아들과 동생의 회복의 시간을 이제 당신이 주장하소서.

동생아, 아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어느 누구보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두렵고,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이다 그러니 잘 이겨내 것으로 믿는다.
그저 빨리 하나님의 시간이 흘러가길 기도한다. 샬롬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