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종 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과목별 출석률 기준 폐지로 학생 특수상황 반영돼야
- 고교학점제 취지 살릴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 필요
- 고졸 검정고시의 난이도와 합격 기준도 재검토돼야

조영종 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뉴스티앤티 DB
조영종 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뉴스티앤티 DB

2025년부터 전국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학생 개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진로와 적성에 맞는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분명 긍정적이다.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업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은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과연 고교학점제가 지금의 방식대로 안착할 수 있는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출석률을 이수 기준으로 삼는 문제다. 현행 제도는 과목 이수를 위해 성취도뿐 아니라 2/3 이상의 출석률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학년 단위의 출석 일수를 기준으로 하여 개인 사정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지만, 지금은 단 한 과목이라도 출석률이 미달되면 학업 실패로 이어진다. 이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기고 있으며, 졸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퇴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고졸 검정고시 합격 기준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인식은 이러한 자퇴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학생의 다양성과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과목별 출석률 기준은 폐지하고, 기존의 유급 제도로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고졸 검정고시의 난이도와 합격 기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상대평가 체제가 불러오는 과목 쏠림 현상과 교육격차다. 상대평가(5등급제) 아래에서 학생들은 진로나 적성이 아니라 경쟁 구도와 대학 입시의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진로와 무관한 과목을 억지로 선택하거나 경쟁이 과도한 과목에 몰려 학습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또 학부모들이 유리한 과목 선택을 위해 외부 컨설팅에 의존하고 비용을 지출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이는 가정의 경제적 부담과 교육격차로 이어진다. 학생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진로를 고민하고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성적 부담을 줄이고 학생이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교사들의 업무 과중이다. 학기별로 수강 과목이 달라지면서 교과 담당 교사는 매 학기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해야 한다. 또한 과목 미이수 학생이 발생하면 상담·보충 지도·진로 재설정 등 추가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담임교사 역시 불가피한 결석으로 인한 미이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학생을 지원하느라 행정적·정서적 부담을 크게 느낀다. 특히, 전입생 관리 문제는 교육과정 담당교사에게 큰 짐이 된다. 새로운 학생이 전학 오면 기존 이수 과목과 학점 중복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업무 부담을 초래한다. 따라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기준을 간소화하고, 출석률을 이수 기준으로 삼는 현행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 전입생의 학점 인정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넷째, 지역과 학교 간 선택 과목 개설의 차이가 불러오는 교육격차다. 대도시의 대규모 학교에서는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지만, 농어촌이나 소규모 학교에서는 교사·교실·기자재가 턱없이 부족해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농·산·어촌 학생들은 도시에 비해 불리한 조건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야 하고, 정보 부족까지 겹쳐 진로 준비의 기회마저 제한된다. 이는 교육의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소규모 학교와 농어촌 학교에 대한 적극적인 인력·시설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 간 공동교육과정 운영·온라인 학교 활성화·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하는 학습센터 운영 등을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이처럼 고교학점제는 제도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제도의 취지대로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하는 학점제가 되려면, 평가 방식의 개선과 교사의 업무 경감·지역 간 불균형 해소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교육은 단순히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의 설계와 함께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단순히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한국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변화다. 그러나 지금의 운영 방식대로라면 그 긍정적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때이다. 그래야만 고교학점제가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조영종 충청남도교육삼락회 상임부회장·교육환경운동가·전 한국 국공립고등학교장회 회장·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전 천안오성고 교장·전 천안부성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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