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종 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사회 전반의 '성과 중심 문화'와 SNS의 '쉬운 성공' 환상이 큰 문제
- 노동의 가치에 대한 교육 강화와 실질적인 진로 체험 프로그램 필요
- 자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니?"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고 싶니?" 묻자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결과가 있었다. 의사·교사·공무원 같은 전통적인 인기 직업 외에 ‘유튜버’ / ‘인플루언서’ / ‘로또 당첨자’와 같은 직업(?)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이른바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답한 청소년들이 적지 않아 놀랍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오늘날 청소년들의 가치관 변화와 진로의식의 왜곡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돈 많은 백수’라는 말은 겉으로 보면 가벼운 농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노력보다는 우연이나 부모의 배경·한탕주의에 의존하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명품을 소비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이들은 마치 아무 노력 없이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환상에 불과하며,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일하지 않고도 풍요롭게 사는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이 현상은 단지 한 세대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오늘날 청소년들이 마주한 현실과 교육의 공백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이러한 가치관을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사회 전반의 ‘성과 중심 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사회는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노력해서 얻는 성공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버는 사례에 주목한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처럼 한 번에 스타가 되는 사람이 주목받고, 로또 당첨자나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의 삶이 이상향처럼 비춰진다. 이들은 특별한 노동 없이도 고급차를 몰고 명품을 소비하며, 청소년들에게 ‘쉬운 성공’의 환상을 심어준다.
둘째, 진로교육의 부족이 또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학교 교육은 여전히 입시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을 탐색하거나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기회는 부족하다. ‘진로’는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진로교육은 여전히 부차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셋째,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도 원인이다. 많은 부모들이 ‘좋은 직업’만을 강조하면서 자녀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기회를 빼앗는다. 일부 부모는 자녀에게 노동보다는 안정적이고 돈이 되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재촉하면서 ‘일의 가치’보다는 ‘돈의 가치’를 주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은 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담과 회피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인적인 진로교육의 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진로교육은 단순히 직업 목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흥미·재능·가치관을 스스로 탐색하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노동의 가치에 대한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땀 흘려 일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 체험과 현장 방문·직업인 인터뷰 등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이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를 위한 가치 있는 행위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진로체험을 위한 활동을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해야 한다. 학교 밖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젝트도 효과적이다.
셋째, 가정에서의 진로와 관련된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꿈과 진로에 관해 열린 자세로 대화하며, 성공의 다양한 기준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직업의 사회적 위상이 아닌 개인의 적성과 가치에 기반한 선택을 지지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미디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형성되는 왜곡된 성공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기를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은 청소년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만들 것이다.
‘돈 많은 백수’는 결코 건강한 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일과 삶·노력과 성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공허한 환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꿈은 자신만의 가치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피어난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과정을 안내할 수 있다면, 그들은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니?”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싶니?”를 물어야 할 때다.
* 조영종 충청남도교육삼락회 상임부회장·교육환경운동가·전 한국 국공립고등학교장회 회장·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전 천안오성고 교장·전 천안부성중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