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종 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교육학박사(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자연광이 잘 드는 창문 하나까지도 아이들의 정서에 은연중 영향을 미침
- 상호 존중과 배려가 살아 있는 학교 분위기는 민주적 시민의식을 길러줘
- 교사는 교과 지식의 전달자이기 이전에 인격의 거울이며 삶의 모범 돼야

물리적·공식적 교육과정 못지않게 학교 교육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이는 교육과정 문서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배우게 되는 가치·태도·행동 양식을 말한다. 특히, 학생들의 인격 형성과 사회적 역량에 있어 잠재적 교육과정은 표면적 교육과정보다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잠재적 교육과정이 사교육보다는 공교육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 현장은 지식 전달 중심의 기능적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학교는 학생이 친구들과 생활하고, 교사와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공간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삶의 방식과 인간다운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이는 공교육이 인성교육의 중심이자 대체 불가능한 장임을 시사한다.
먼저, 학교 환경은 학생의 감정과 태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분위기의 교실은 학생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벽면에 붙은 칭찬 스티커·다채로운 학생 작품·자연광이 잘 드는 창문 하나까지도 아이들의 정서에 은연중 영향을 준다. 반대로 무질서하고 냉담한 분위기의 학교는 학생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학습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학교 조직 문화도 중요하다. 상호 존중과 배려가 살아 있는 학교 분위기는 민주적 시민의식을 자연스럽게 길러낸다.
둘째,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가장 강력한 축 중 하나다. 학생들은 교사보다 친구들로부터 더 많은 사회적 신호를 받으며,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경쟁·공감·갈등 해결 등 다양한 사회적 기술을 익힌다. 예를 들어, 조별활동이나 체육시간에 경험하는 협동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고, 때로는 따돌림이나 소외 경험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체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친구관계는 교육과정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학생에게 깊은 사회적 학습을 유도하는 통로가 된다. 이는 학생 간 관계가 활발히 형성되는 공교육에서 특히 의미 있는 교육 자산으로 작용한다.
셋째, 교사의 인성과 태도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결정적 요소다. 학생은 교사의 말보다 행동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정직한 교사는 정직을, 친절한 교사는 배려를,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교사는 복종과 위축을 배우게 한다. 교사가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고, 공정한 태도로 대할 때 학생은 스스로 존중받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반대로 교사의 차별적 언행이나 무관심은 학생에게 소외감을 안기며 자존감을 낮춘다. 교사는 교과 지식의 전달자이기 이전에 인격의 거울이며,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일대일 지식 전달이 중심인 사교육보다 교사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교육에서 더 뚜렷이 실현될 수 있다.
결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단지 교과서에 있는 지식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말과 행동·분위기와 관계·무심한 하루하루 속에서 형성되는 것들이 진짜 교육일 수 있다. 표면적 교육과정이 지식을 키운다면, 잠재적 교육과정은 사람됨을 기른다. 그리고 이 잠재적 교육과정의 주 무대는 다름 아닌 공교육이다. 사교육이 아무리 지식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해도 인성과 태도·시민의식을 체계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은 오직 공교육만이 가능하다. 공교육이 바로 설 때 우리 사회의 인성교육도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조영종 충청남도교육삼락회 상임부회장·교육환경운동가·전 한국 국공립고등학교장회 회장·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전 천안오성고 교장·전 천안부성중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