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문선정 시인

시의 사계
시의 사계

전생과 놀다 / 이서화

송정암 절 마당엔
봄햇살이 개털처럼 날린다
벚꽃도 아지랑이도 개털과 한 계절로
따뜻한데, 털갈이 중인 개 한 마리
어디서 물고 온 것인지 장갑 한 짝 물어뜯고 있다
공중이 못마땅한 듯
물고 있던 장갑을 던지며
주먹을 먹이고 있다
개는 나무 밑을 맴돌다 다시 마당으로
어쩌면 전생의 인연이 생각난 듯
또 측은한 듯
왼쪽 손 하나 핥고 있다
그래서 네 개의 발을 받았을까
사람의 말, 몇 마디만 알아들어도 칭찬받는
귀를 가지고 있다
개와 발은 서로 생각나고 또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논다
절마당 귀퉁이에서
네 발을 정성스럽게 핥는 개
전생이 가끔 생각나는 듯
두 귀가 산문 쪽에서 골똘하다

이서화 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2020/천년의시작) 중에서

 

문선정 시인
문선정 시인

[시 평설 - 문선정] 누군가의 전생을 우연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건 봄 햇살이 퍼지는 절 마당이어서였을까? 시인은 개가 장갑을 갖고 노는 모습마저도 놓치지 않고 노련한 발 놀림과 헛손질하는 주먹을 대입시켜 나열한다. 

동시에 사람의 방대한 말을 교감하는 익숙한 관계에서 무한한 직관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시공간을 고요하나 심심하지 않게 펼쳐 놓았다. 사람이 동물을 관찰하며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도, 흐릿한 내가 흐릿한 생각을 거머쥐게 만든다. 

개의 전생을 살피는 하오의 시간. 탱탱한 바람의 태교를 거친 시력詩力으로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 개의 전생이 산문 쪽으로부터 천천히 걸어온다.

저것 봐, 장갑을 던지고 주먹질을 하다 정성스럽게 앞발을 핥는 모습이 측은한 개. 열어도 열어도 열리지 않는 애초의 탯줄로 이어진 뿌리가 수직으로 이어져 있는 이생에서 전생을 갸웃거리는 귀를 봐. 궁금한 바람이 출렁거리네.

서로 한참을 바라보고 놀던 순간이 불현듯 낯설어지면서 뭉클한 무엇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데, 골똘해지면 한없이 저릿저릿할 것 같은 아득한 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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