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이가을 시인

시의 사계

단단한 고요 / 김선우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길 날아온 늦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이가을 시인
이가을 시인

[평설-이가을 시인] 도토리를 둘러싼 소리의 풍경이 친근하고 다정하다. 마른 잎사귀에 얼굴 부비며 노는 도토리의 모습이 생생한 즐거움을 준다. 숲을 거닐다 발부리에 닿는 도토리의 서사를 듣고 있다. 어쩌면 한 편의 시 같기도 음악같기도 하나 어떤 시와 음악이 도토리의 생애를 이토록 아름답게 읇을까. 아니 이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있던가. 

시인은 시의 눈으로 도토리를 보고 관찰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무심히 스쳐갈 어쩌면 흔한 풍경을 온 몸으로 보고 듣고 교감한다. 주위에 무심히 스치는 것들이 많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외면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지 못한다. 바쁜 현대인의 불행이다.

도토리는 소리를 가두고 단단한 묵이 되었다. 바깥의 소리를 안으로 가두고 고요의 세계로 나아갔다. 소리에서 묵끼지- 도토리의 일생은 간장양념에 살짝 버무린 요리, 묵무침으로 입맛을 돋우고 끝맺는다. 자연의 소리에 하찮은 소리는 없다. ‘모든 소리들이 흘러들어간’ 자연의 소리에 햇빛을 입히고 키운 도토리에 관한 시를 오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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