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문선정 시인

시의 사계

백년 /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 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백년이라는 글씨

저 백년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 뜨겁게 껴안자던 백년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백년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백년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문선정 시인
문선정 시인

[시 평설 - 문선정] 가슴 짠한 단막극을 본 것처럼 울먹거려지는 시다. 우리는 결혼식장에서 비가 오나 바람 부나 천둥번개 몰아쳐도 함께 하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백 년을 기약 한다. “백 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간 헤어지지만…”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꼭 백 년을 바라보며 부족한 사랑을 채우고 싶어 한다. 살며 5년이면 어떻고 50년이면 어떠한가. 살 부비며 다투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병이 오고 끙끙 앓고 이별 하는 그 꽉 찬 시간이 평생이다. 그 평생이 우리의 백 년이다.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백년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백년이라는 말”

미움의 파편마저 왜 그리움으로 차곡차곡 쌓이는지 모르겠다. 나의 백 년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어떻게 생겼었던가. 백 년이라 이름 새겨진 사람의 등을 편편이 다듬어 ‘백 년’이라는 글씨를 써봐야겠다. 맑은 울음 속에 그동안 잊었던 백 년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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