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이가을 시인

시의 사계

점심 꽃 / 문성해

지난 밤 나리 태풍에 코스모스가 무더기무더기로 넘어져 있다.
온갖 악다구니 빛깔이 뒤범벅이다.

제 난리 속에서도 
저 아비규환 속에서도 피는 꽃이 있다.
쌈박하게 죽지도 못하고 지지리 못나게 피는 꽃이 있다.
그래도 한번은 피고 죽어야 한다고 모질게 피는 꽃이 있다.

숨 막히게 피는 꽃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처럼
제 마음에 점을 찍고 가는 꽃이 있다.
제 마음에 피고 가는 꽃처럼 가늘디가는 꽃이 있다.

문성해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 중에서

 

이가을 시인
이가을 시인

 [시 평설 - 이가을] 아직 봄이라고 하자. 벛꽃도 가고 눈송이 무성하던 이팝나무도 갔지만 여름은 오지 않았다. 코스모스는 가을 산책로에 무더기로 앉을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꽃은 이름이 없다. 이름을 모르는 꽃은 점심꽃이다.

꽃은 두 개의 연에서 등장하고 시적 서사는 마치 서로 다른 꽃을 묘사한 듯 착각을 불러온다. 아비규환 속에 피어 쌈박하게 죽지도 못하고 모질게 피는 꽃과 숨 막히게 피고, 제 마음에 점 찍고 가는 가늘디 가는 꽃은 하나이면서 다른 듯 두 꽃의 자화상이다. 

태풍에 무더기로 넘어져 악다구니로 겨우 힘겹게 버티는 꽃. 죽지 못해 살아있는 태풍 맞은 꽃의 참상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쌈박하게 죽기 어렵고 죽지 않으려면 모질게 피어야하는 운명은 우리네 사는 인생과 닮았다. 
 
제 마음에 점을 찍고 가는 꽃은 누구일까. 태풍의 계절 수많은 꽃들이 스러지지만 꽃답게 살아내려는 어떤 꽃의 다짐을 본다. 마음에 점을 찍는 일이란 누군가를 밝히기 전에 나를 밝히는 것. 마음에 점을 찍는 일. 불을 켜듯 점심꽃을 피워 타인의 마음(방) 환하게 밝혀 보리라. (이가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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