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세상의 주역으로 거듭나길 희망'

벧엘의집 원용철 담당목사
벧엘의집 원용철 담당목사

며칠 전 벧엘의집 공동체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황00이 내 방을 찾아왔다.

1년 남짓 근무한 그는 이제 누나 곁으로 가겠다며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공교롭게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경황없이 작별인사를 설렁설렁 나눴다.

어쩌면 컴퓨터 고장은 핑계이고 그만두겠다는 서운함이 커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힘들어 나름 계획을 세웠다고하니 만류할 방법이 없었다.

한사코 벧엘을 떠나겠다는 그를 잡는 것은 욕심인 것 같아 누나 곁에서 잘 살라고 격려했다.

황00은 노숙인 출신 일꾼이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벧엘에 오기 전, 부산의 한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도 했다.

그런 탓인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었다.
원인은 지인의 배신, 사업실패, 실직 등 아픔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렇듯 인생이 꼬이기만 해서 가슴 활짝 펴고 웃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20대 나이에 괌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당시 로타라는 섬에서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홀로 텐트생활을 했을 때라고 한다.

그런 뒤 지금까지 기쁜마음으로 살아 온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소심한 성격이다. 하지만 천성이 착하고, 근면 성실하고, 나름 책임감도 있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 배신, 실직 등으로 충격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아픔은 그를 더욱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피해의식으로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벧엘에서 생활인이 아닌 조리원으로 일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는 벧엘의 집을 지원하면서 제2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벧엘의집 식구들을 위해 맛난 식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자활과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조리원 일을 이제 그만 두게 됐다. 그의 바람대로 새 인생을 찾아 떠나는 앞날의 건승을 기도한다.

벧엘의집에는 당사자가 사역자로 일하는 자리가 몇 자리 있다. 그 중 하나가 조리원이다.
벧엘이 당사자를 사역자로 참여시킨 것은 미국 LA에 있는 홈리스센터인 미션센터를 방문한 뒤 가졌던 생각이다.

그곳은 사역자 대부분이 홈리스 출신으로 미션센터에서 재활에 성공한 후, 과거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잘 안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이 경험했던 좌절과 아픔을 잘 알기에 홈리스의 사회복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기회가 되면 식구들 중에 벧엘의 꿈을 이뤄가는 사역자로 일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미국의 홈리스센터의 상황과 한국의 노숙인 시설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다보니 미국처럼 일꾼 대부분을 당사자로 할 수 있는 여건은 못 된다.

하지만 미국이나 우리 사회나 노숙인이 되는 것은 빈곤이란 공통분모가 있다.
노숙인은 범죄자, 알코올 중독, 게으른 사람, 무책임한 사람,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에서 밀려나 도심 한복판에 홀로 내던져진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가능한 부분 미션센터가 자랑하는 당사자를 사역자로 세우는 일을 적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당사자들을 일꾼으로 세웠지만 매번 실패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황00이 떠난 자리에 다시 벧엘 식구 중 한 명을 채웠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모습을 본 조리원은 자신을 벧엘에 취업시켜 달라고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의욕도 내비쳤다. 정말 그렇게 되길 소망해 본다.

그래서 벧엘이 만들어 가는 사람다운 세상의 주역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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