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종 교육학박사·환경운동가(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 / 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학생 인권의 핵심은 학생이 존중받으며 자신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 기초학력 미달 상태로 졸업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제한될 수도
- 교사의 적극적인 교육활동이 위축되어 학생의 학습권이 방치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인권 침해

조영종 교육학박사·환경운동가(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 / 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뉴스티앤티 DB
조영종 교육학박사·환경운동가(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 / 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 뉴스티앤티 DB

“나 때는 말야”를 싫어하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한번 찾아야겠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는 나머지 공부라는 게 있었다. 전화가 없어 집이나 부모에게 연락도 안 되던 그 시대에 하루 공부가 마쳐질 때쯤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무개와 아무개는 오늘 남아서 선생님과 공부 좀 하고 가거라”고 말씀하시면 그들은 나머지 공부에 당첨된 것이었다.

오늘날 어느 초등학교에서 이런 담임 선생님이 계신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학부모의 항의가 예상된다. ‘왜 우리 아이만 남기느냐?’와 ‘사전에 동의도 없이 왜 나머지 공부를 시키느냐?’는 식의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머지 공부’가 낙오자 낙인처럼 받아들여져 아이의 인권을 심대하게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학생 인권을 그 어느 때보다 중시하는 흐름 속에 있다. 교사 중심의 권위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자율성과 존엄을 존중하려는 변화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기초학력의 보장이야말로 학생 인권 보장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교사들은 요즘 위축감을 호소한다. 학생 지도를 하다 보면 ‘인권침해’라는 말이 돌아올까 조심스럽고, 학력 신장보다는 분위기 유지에 집중하게 된다는 토로가 잦다. 물론 교사도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교사의 적극적인 교육활동이 위축되어 학생의 학습권이 방치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기초학력이란, 학생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지적 기반이다. 문해력과 수리력은 단순히 시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힘이다. 이러한 기초학력이 부족할 경우 학생은 향후 고등교육으로의 진입은 물론, 사회생활과 직업 활동·심지어는 일상적인 의사소통과 정보 접근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곧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급속히 지식 중심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없이는 어떤 권리도 실질적으로 누리기 어렵다. 은행 업무부터 병원 진료·민원 신청·심지어는 SNS를 통한 관계 형성까지도 기초학력을 전제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기초학력 미달 상태로 졸업하는 것은 곧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의 진입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학생 인권의 핵심은 학생이 존중받으며 자신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기초학력의 확보이다. 교육은 모든 인권의 기반이 된다. 배움이 단절되면 자유도, 권리도, 선택도 제한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교육적 책임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기초학력 보장을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학습 부진 학생에게 보충 지도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성적 개선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이며, 이 또한 인권의 실현이다. 오히려 교사가 학생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단지 ‘학생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방임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다.

정부와 교육청·학교는 기초학력 보장에 있어 책임 있는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진단-보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과 정서적 지지를 연계해야 한다. 동시에 교사가 기초학력 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신뢰하고 보호하는 문화도 마련되어야 한다.

학생 인권이 교사의 소극성을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기초학력을 보장하려는 교사의 노력 자체가 학생 인권을 실현하는 행위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난날 나머지 공부는 단지 '부족해서 시키는 벌'이 아니었다. 어떤 아이에겐 선생님과 집중해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어떤 아이에겐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 기회였다. 문제는 ‘나머지 공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장치가 바뀌었다는데 있다 할 것이다.

기초학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의 문제다. 그리고 기본은 인권이다.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교육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인권은 배움을 통해 현실이 된다. 기초학력 보장은 그 시작점이다. 따라서 학교도 교육청도 학생들의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 조영종 교육학박사·환경운동가(한국바른교육연구원 원장 / 전 한국교총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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